[이슬람 문명과 도시] (7) 레바논 베이루트
수정 2006-04-11 00:00
입력 2006-04-11 00:00
내전 끝나고 지금까지 16년이 지나며 베이루트 시민들의 마음도 도시의 겉모습이 단장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아직도 고통스럽게 남아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슬람문화연구소 제공
베이루트 중심가 사하트 슈하다(순교자광장) 한쪽, 지중해를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인터콘티넨탈 페니시아 호텔 앞 바닷가 길을 지나는 것이 이제 나에겐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내가 이 길을 거닐며 남긴 추억이 참 많았다. 마땅히 찾아갈 만한 공원이 없는 베이루트에서 바닷가 길(코르니시)은 모든 시민들이 찾아드는 휴식의 공간이다. 산보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요리조리 사람들 사이를 빠져 지나는 젊은이들, 정겨운 연인들…. 그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참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을 이곳에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두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폭탄테러로 온통 망가져버린 빌딩들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그 아래 요트장에선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풍성한 햇볕을 즐기고 있다. 고작 1년 전 저 건물들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와 수행원들 그리고 길을 가던 시민들이 죽어가지 않았던가. 그 충격은 얼마나 컸던가. 하루를 빼놓지 않고 벌어진 규탄시위, 그때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나. 그뿐인가 하리리 총리 암살 이후 이어진 폭탄테러가 몇 번이고 그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가.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그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이곳에서 희희낙락 음악과 햇볕을 즐기고 있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건가.
그리고 이스라엘에 다녀온 한 한국인 친구가 전해준 말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 친구가 겪은 일은 이런 거다.“예루살렘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서 주스 한 잔 마신 다음 빨대를 갖고 놀고 있었지요. 빨대 끝을 잡고 둥글게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감은 다음에 손가락으로 탁 튕겨 ‘딱’ 소리가 나게 하는 거요. 그런데 주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던지…. 여기가 어떤 곳인데 그런 장난을 하느냐는 타박을 받았답니다.”
어느 날 저녁 베이루트 시민들이 많이 모인 상품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다. 갑자기 무언가 터지는 커다란 소리가 전시장 입구 쪽에서 들려왔고 곧 주변의 시민들이 혼비백산해서는 마구 뛰어 달아나는 거였다.
한순간 입구 쪽을 바라봤지만 어떤 연기나 먼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잠시 뒤 그저 트럭의 타이어가 터진 소리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의 얼굴엔 약간 민망해하는 듯한 웃음이 떠올랐는데 이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16∼17년에 걸친 내전을 가까스로 끝낸 지 이제 겨우 16년, 아직도 피냄새 나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그저 가슴 아플 뿐인데 베이루트 시민들은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 와서 그런가 어디에서 폭탄이 터지고 폭격이 일어나도 바로 다음날이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간다.
다마스쿠스가 답답하다기보다는 베이루트가 너무나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민소매티셔츠를 즐겨 입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베이루트에서 첫 여름을 보낼 때였고 나는 서울에서 늘 그러했듯 샌들에 반바지차림을 줄곧 고수했다. 아무런 부담없이 공공연하게 대통령이니 총리의 욕을 해대는 것을 보면 아랍세계에서 언론의 자유도가 가장 높다는 말이 분명한 사실이지 싶다. 다마스쿠스의 개가 마음껏 짖고 싶어 레바논으로 넘어왔다는 우스개까지 있으니 말이다.
근래 영화 두편을 통해 베이루트 시민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이고 또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베이루트 극장가에 개봉된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el)’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다양한 종교종파가 공존하는 베이루트는 한때 다원주의의 성공모델이었고 한순간 그 균형이 깨지며 모자이크사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베이루트 시민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인이 차지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수난’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라 꼭 보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좌석을 예매하지 않으면 며칠을 기다려야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자리가 남아돌던 베이루트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독교에서 찾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이 영화를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베이루트에는 폭탄이 터지고 있고 사람이 죽어간다. 그럴 때마다 분기에 찬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친다.“빗담 비루흐 아프디카 야 루브난(레바논아, 너를 위해 피와 영혼으로 나를 희생하리).”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구호를 듣고 싶지 않다.
안정국 명지대 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2006-04-11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