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59)-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5)
수정 2005-10-24 00:00
입력 2005-10-24 00:00
제2장 性善說(35)
묵자에 대한 장자의 독설은 날카롭다.
특히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보면 오히려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다 보면 틀림없이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以此敎人 恐不愛人 以此自行 固不愛己)’란 구절은 촌철(寸鐵)의 진리다.
장자는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의 ‘애기애타’ 정신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애기애타(愛己愛他).
“…묵자의 도를 일부러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래를 해야 할 때에 노래를 하지 않고, 곡을 해야 할 때에도 곡하지 않고, 즐겨야 할 때에도 즐기지 않는다면 이것을 과연 인정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살아서는 부지런히 일만 하고, 죽어서는 박대를 받게 되니, 그들의 도란 너무나 각박한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근심이나 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슬프게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실행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성인의 도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천하 사람들은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묵자가 비록 홀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천하 사람들은 어찌할 수 있는 것인가. 온 천하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왕도(王道)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금욕주의(禁慾主義:Asceticism).
일체의 정신적, 육체적 욕구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종교 또는 도덕적인 이상을 성취하려는 묵자의 엄격한 금욕주의 사상은 그 자신이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라.’고 부르짖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근심이나 하게 하고, 슬프게만 만들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장자의 지적은 광신적 속죄(贖罪)에 빠졌던 스토아 주의적 학파들의 모순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이런 묵자의 금욕주의적 사상은 전에도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비중국적인 특이한 사상이므로 금욕의 도가 지나쳐 자학(自虐)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천하제일의 독설가도 묵자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속으로 존경의 염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장자의 태도는 ‘천하(天下)편’에 나오는 묵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결론을 통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묵자와 금골희의 생각은 옳은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옳지 못하다. 후세의 묵가들도 반드시 스스로를 괴롭힘으로써 넓적다리에는 살이 없고 정강이에는 털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기는 하여도 다스려지게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묵자는 진실로 천하를 사랑하기는 하였다. 올바른 도를 구하여 얻지 못한다면 비록 몸이 깡마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두지 않을 사람이었으니, 묵자야말로 재사(才士)임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2005-10-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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