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39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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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7-26 07:56
입력 2005-07-26 00:00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22)


이처럼 순우곤은 당대 최고의 세객이었다.

세객(說客).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국을 유세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그 무렵 제국의 군주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여 패도정치를 펼쳤던 전국시대 때 책사나 모사(謀士)출신의 세객들이 즐비했는데 그 중 언변으로는 순우곤이 제일이었다.

순우곤의 능란한 말솜씨는 다른 기록에도 엿보인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제왕이 순우곤을 시켜서 초나라에 따오기를 헌상케 하였다.

도문을 나서서 가는 도중에 새장을 바라보니 따오기가 새장에 갇힌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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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순우곤은 따오기를 날려 보내고 빈 새장을 가지고 초왕을 만났다. 초왕은 빈 새장만을 들고 온 순우곤에 화가 나서 큰소리로 꾸짖어 말하였다.

“그대는 사신으로 오는 주제에 빈 새장만을 들고 왔단 말인가.”

그러자 순우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왕께오서는 저를 시켜 초왕께 따오기를 헌상케 하셨습니다. 물가를 지날 때 따오기가 목말라하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새장에서 꺼내어 물을 먹였는데, 달게 마시던 따오기가 갑자기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아찔하여 저는 배를 찌르고 자살하려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저의 대왕님을 한갓 금수로 인해서 선비를 자살하게 했다고 오히려 비난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그만뒀습니다. 따오기는 다른 새와 비슷비슷한 놈이 많아 딴 새를 하나 구해 살짝 대치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이것은 불신의 행위로 우리 임금님을 속이는 게 되기 때문에 그만뒀습니다. 한편 다른 나라로 도망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두 나라의 군주 사이의 선린이 두절되는데 마음아파 역시 그만뒀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잘못 저지른 죄를 고하고 머리를 조아려서 대왕께 벌을 받으려 하는 바입니다.”

순우곤의 말을 듣고 초왕이 말하였다.

“과연 훌륭한 인물이로다. 제왕에게는 이런 신의의 신하들이 많이 있었구나.”

초왕은 순우곤에게 후히 상을 내렸으며, 사신으로 간 순우곤은 기대 이상의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순우곤은 따오기가 불쌍해서 놓아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의를 거짓으로 꾸미기 위해서 일부러 따오기를 놓아주었다는 점이다. 순우곤의 이러한 위계는 백성(따오기)을 위한다는 정치를 펴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과 영달을 꾀하는 정치의 속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순우곤은 이처럼 뛰어난 변론으로 마침내 제나라의 대부가 될 수 있었다. 제나라의 위왕이 위나라를 치려 하자 간하였던 순우곤의 진언도 명언에 속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한자로(韓子盧)란 매우 발 빠른 명견이 동곽준(東郭逡)이란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습니다. 그들은 십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 이것을 발견한 전부(田夫: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를 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모두 지치고,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조나라와 남쪽의 초나라가 이 기회를 보아 전부지공(田夫之功)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2005-07-2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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