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209)-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수정 2004-10-28 07:56
입력 2004-10-28 00:00
제4장 喪家之狗
그러나 영공은 공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영공의 우유부단함을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영공이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영공이 노쇠한 데다가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자를 등용하지도 않았다.”
영공은 이미 늙어 노쇠하였고, 공자를 무용지물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공자는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기고 위나라를 다시 떠나기로 결심하는데, 그때 공자가 남긴 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실로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1년이면 그 나라를 바로잡을 수가 있고,3년이면 완전한 정치의 성과를 올릴 수가 있으련만(苟有用我者 朞月而已可也 三年有成).”
이는 이웃나라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로 2000년의 세월이 흐른 1515년 8월. 중종이 직접 성균관에 거둥하여 다음과 같은 알성시의 문과시험을 출제하였던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그 시험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께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셨다.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1년이면 나라를 바로잡을 수가 있고, 적어도 3년이면 완전한 정치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성인이 어찌 헛된 말을 하셨으리요. 그 뜻의 규모와 정치를 베푸는 방안에 대해여 공자께서는 시행하기 전에 먼저 작정한 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이를 낱낱이 헤아려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궁정쿠데타에 의해 연산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옹립된 중종은 통치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나라의 기강과 법도는 땅에 떨어지고 자신은 다만 허수아비 왕으로 재위하고 있음을 한탄하여 직접 그런 문제를 출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중종의 심정은 계속되는 알성시험문제를 통해 명백하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주나라 말기(공자가 생존해 있을 당시의 전국시대)는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이미 땅에 떨어져 있는 난세임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3년 이내에 바른 정치를 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공자께서 등용되셨다면 그로부터 3년 후의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중종의 안타까움은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세 번이나 위나라를 찾았던 공자. 만일 영공이 공자를 등용해서 3년 동안 나라의 정사를 맡겼더라면 그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마찬가지로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아니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과 타협하여 살아남았더라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가 꿈꾸던 하늘나라는 이 지상에서 이루어졌을까. 인류의 구원은 실현되었을까. 공자가 3년 동안 위나라에서 정사를 맡았더라면 위나라는 주나라처럼 이상국가가 되었을까. 어지러운 전국시대는 종식되고 태평성대가 오게 되었을까.
역사에 있어 가정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공자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3년 동안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더라면 위대한 통치술은 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인류의 대사상가로 거듭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그토록 염원하였던 대로 3년 동안 정치를 맡은 후의 위나라를 보고 싶은 것이 중종의 간절한 바람. 아마도 중종은 자신을 우유부단한 영공에 비유하여 공자와 같은 성인의 대두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그런 출제를 했을지도 모른다.
2004-10-2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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