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개정방향’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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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7-15 00:00
입력 2004-07-15 00:00
교육계가 또 한 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다.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쟁점이 됐다.교육부가 엊그제 검토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사립학교 교직원을 법인 이사회를 대신해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임명토록 하고,이사회에서 설립자의 친·인척 비율을 줄이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교육의 공공성을 빙자해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것으로 대다수의 건전 사학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그런가 하면 2000년 이래 지금의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끈질기게 주장해온 범국민교육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들대로 아쉬움을 토로한다.전국 중·고교의 32.2%,대학의 85.5%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의 틀을 다시 짜는 사립학교법 개정 작업은 쟁점도 많고,그 하나하나가 민감한 사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장인 홍성대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명예회장과 범국민교육연대 상임대표인 박거용 상명대 교수와 대담을 마련해 사립학교법 개정의 핵심을 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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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거용  범국민교육연대 상임대표
박거용 범국민교육연대 상임대표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는 까닭이 무엇인가요.

-박 교수 우리 교육은 사립학교의 의존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국민의 교육기관으로서 위상이 높은 만큼 교육기관으로서 공공성이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은 비리와 부정,부패가 구조화되어 있고 관행화되어 있습니다.잘못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습니다.사립학교의 공공성,학교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홍 회장 사학의 비리가 침소봉대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4년 전 일입니다.1998년부터 2000년까지 905개 사립 중·고교가 교육청 감사에서 부정과 비리로 적발됐다고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1.1%만이 문제의 비리였고,나머지는 행정착오나 부주의로 빚어진 실수였습니다.비리 문제도 그렇습니다.전국의 사학 법인이 1300여개,학교가 2000여개에 이릅니다.그 수가 많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사학을 질타하는 대신에 대다수의 건전한 사학을 격려하고 뒷받침해 주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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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대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명예회장
홍성대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명예회장
사학 법인들은 이번 교육부 개정안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보십니까.

-홍 회장 사립학교의 자산은 사유재산입니다.설립자의 재산은 아니지만 사학을 경영하는 법인의 재산입니다.무릇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하듯 법인의 독자적인 재산권 또한 보장되어야 합니다.또 하나 사립학교를 세운 건학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자주성은 확보돼야 할 것입니다.학교 운영에서 인사권,재정권,감사권 그리고 규칙 제정권 등이 침해된다면 사립학교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박 교수 사학은 개인 재산의 사회환원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육영사업을 하겠다고,중·고교며 대학을 세울 때에는 이미 개인의 재산이 아닐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학 재단들이 학교를 문어발식으로 거느리고 치부의 수단으로 삼고,세습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사학이 튼실하게 육성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사학의 특수성을 강조하시지만 사립 초등학교에서 보듯 사립학교의 특수성도 이제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사학 재단의 이른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재단 이사회에 손대야 하나요.무슨 방안이 있을까요.

-홍 회장 사학 재단의 이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공무원법을 준용하여 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또 관할청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전체의 3분의1로 제한하고 있는 설립자의 친·인척을 문제 삼지만 현실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사립학교 이사회는 대개 이사장을 포함해 7명으로 되어 있습니다.최소한 3분의1은 보장을 해주어야 이사장을 제외하고 한명의 이른바 친·인척이 이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가업을 잇는다는 차원에서 한 사람쯤은 이사회에서 활동하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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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 사학에서 이사회의 권한은 무소불위입니다.전권을 행사합니다.그 권한을 분산하자는 것입니다.한국 사학의 이사회 내막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오너 이사라는 실세 이사가 있습니다.실세 이사를 중심으로 그의 뜻을 헤아려 움직이는 거수기 이사 그리고 사학 재단끼리 서로 바꾸어 이사를 맡아 주는 품앗이 이사가 포진합니다.여기에 정·관계 출신으로 이른바 외풍을 막아줄 방패 이사가 자리를 잡습니다.비리가 싹틀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학 비리 관련자가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 기간을 지금의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려고 하고 있지요.

-홍 회장 사학 비리는 근절되어야 합니다.또 부정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그러나 이사장 개인이 비리를 저질렀다 해서 다른 이사까지 취임승인을 마구 취소하는 관행은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또 다른 직종과 형평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공무원이 비리와 관련해 해임되면 3년,파면당했을 경우 5년이면 복귀할 수 있습니다.사학 관련자에게 공무원과 같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옳은지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박 교수 이사장의 비리를 개인비리 차원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정상적인 이사라면 이사장의 비리를 막았어야 합니다.학교 운영의 모든 결정이 이사회에서 이뤄지는데 이사장의 반교육적 행태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복귀 시한의 형평성을 말씀하셨는데 다음 세대 교육을 자임한 처지이고 보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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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 임명권을 아예 학교장이나 총·학장에 부여하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박 교수 지금은 대학의 경우 이사회의 임명권을 총·학장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부나 학과의 추천을 받아 인사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총·학장을 거쳐 이사회가 최종 임명토록 하는 방안이 정착되어야 합니다.경영권 침해 논란이 있다면 신사적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중·고교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대신,국·공립학교처럼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 가운데 임명토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홍 회장 먼저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교직원을 임명하면 투명성이 확보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입니다.또 학교를 대표하는 것은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아니라 법인 이사회입니다.이사회의 책임하에 교직원을 임명토록 해야 합니다.건학이념을 실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사회에서 임명권을 행사해야 맞습니다.학교장 등은 학교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법인 이사회는 영원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사립 중·고교도 국·공립처럼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 중에서 임용토록 하자는 주장은 이미 교원자격증이 있는 사람의 자격을 또 심사하자는 것으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은 어떻습니까.

-박 교수 국·공립 중·고교에서 학교 운영위원회가 도입되면서 예산의 규모며 쓰임새 등을 점검해 학교 운영이 크게 건전해졌습니다.재원의 효용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적극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홍 회장 이사회 이외에 다른 기구들을 법제화할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그 혼란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교육은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교육 활동을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옥석이 가려지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입니다.일부 사학의 잘못 때문에 초가삼간 태우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되어선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사회 정인학 교육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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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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