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3)-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기자
수정 2004-04-02 07:48
입력 2004-04-02 00:00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는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나으리,나으리의 재능은 족히 한 시대를 경제(經濟)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오나 그것은 반드시 주상의 마음을 얻은 후에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갖바치의 마지막 편지는 조광조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였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나으리께오서는 반드시 주상의 마음을 얻어 하늘에서부터 새는 비를 우산으로 막아야만 태평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하오나 주상께오서는 지금 명성 때문에 나으리를 쓰시지만 실제로는 나으리를 잘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만일 나으리와 주상 사이에 소인이 끼어든다면 나으리께오서는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갖바치의 문장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조광조 역시 중종의 유약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갖바치의 말대로 지금 주상은 필요성 때문에 자신을 쓰지만 언젠가는 변심하여 내칠지도 모른다.
소인(小人).이는 유교에서 군자(君子)와 대비되는 사람으로 ‘학문이 깊고,덕이 높고,행실이 바른 사람’을 군자라고 일컫고 있으며,이에 비하면 소인은 ‘학문이 얕고 이익을 좇아 함부로 날뛰는 소인배’를 뜻하는 것이다.논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자의 가르침은 ‘군자의 학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사람들이 훌륭한 군자가 될 것을 열심히 설교하고 있으며,공자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군자는 편안함에서 교만하지 않고,소인은 교만하면서 편안하지 못하다.(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
조광조 역시 갖바치의 충고대로 평소 소인의 음모를 경계하고 있었다.그는 평소 중종에게 왕으로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이 세상에 음과 양,낮과 밤이 있는 것처럼 조정에서는 군자와 소인이 섞여있을 수밖에 없어 이들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군주 자신의 판단력 밖에 없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구별하기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대감이 논하고 재상이 개진하는 바에 따라 그 사람이 현명한지,안한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옛날에는 임금이 신하들 접하기를 마치 아비와 형이 자식과 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하여 생각하는 바를 모두 토로하게 하였기 때문에 임금은 그들이 행하는 것을 보고 그 말 하는 것을 들으며 그 사람의 깊이 숨어 있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중략)… 비록 현명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왕을 가까이 모실 때에는 착한 말 하는 척하며,언사를 꾸며서 아뢰므로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아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그러므로 후세에 와서는 사람을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으므로 임금 된 사람은 한층 더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그때 조광조는 갖바치가 남기고간 문서의 내용을 다 읽어 보고 그것을 수표교 위에서 찢어버렸다.찢어진 종이 조각은 모래톱 위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아낙네를 지나 청계천의 맑은 개울물을 따라 흘러가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벌써 1년여 전.
그 일년 동안 조광조는 얼마나 갖바치에 대해 수소문하였던가.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는가 하면 사물놀이패 각설이를 따라서 전국을 떠돈다는 뜬소문이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조광조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갖바치의 모습을 쳐다보며 생각하였다.
바로 그 갖바치가 1년 만에 제 발로 나타난 것이었다.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광조가 죄인이 되어 유배 길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한양에서부터 줄달음질쳐서 좇아온 것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대의 말이 정확하였네,그려.”
조광조는 탄식하여 웃으며 말하였다.
“나와 주상 사이에 소인이 끼어든다면 화를 면할 수 없다던 그대의 참위가 오늘날 그대로 들어맞았네,그려.”
2004-04-02 4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