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7)-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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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25 00:00
입력 200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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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사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노려보며 말하자 나졸들이 모두 사내를 쳐다보았다.비록 기골이 장대하긴 하였지만 봉두난발한 천민에 불과한 모습이었다.그런 쌍놈이 함부로 ‘네 이놈’하고 불호령을 내렸으므로 군세가 강하기로 소문난 의금부 나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셈이었다.

“이놈 봐라.”

나졸들의 수장격인 나장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저놈을 당장 혼찌검을 내어 이리 끌고 오도록 하여라.”

화가 난 나졸들이 한꺼번에 주장을 들고 덤벼들었다.그러나 네댓 명의 나졸들이 동시에 덤벼들었으나 놀랍게도 사내의 몸에는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한결같이 무술에 능한 군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몸은 바람처럼 솟구쳐서 자유자재로 신출귀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수레 위에 앉은 조광조가 바깥이 소란스럽자 물어 말하였다.그러자 나장이 답하였다.

“웬 사내가 나으리를 부르며 쫓아오고 있어 이를 쫓고 있는 중입니다.”

“잠깐 수레를 멈추시게나.”

나장이 수레를 멈추자 조광조가 말하였다.

“그 자를 이리 데려오시게.”

나장이 나서서 싸움을 뜯어말리고 그 사내를 조광조의 곁으로 데려왔다.한바탕의 격전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숨소리하나 거칠어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조광조가 묻자 사내는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나으리,대사헌 나으리.쇤네를 모르겠나이까.”

조광조는 물끄러미 사내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쑥대머리로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을 덮은 검은 구레나룻.남루한 모습만 보면 갈 데 없는 쌍놈이었다.그러나 천천히 사내의 행색을 살피던 조광조의 입에서 어느 순간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니 자네가 웬일인가.”

“나으리께오서”

무릎을 꿇은 사내가 고개를 숙여 말하였다.

“유배 길에 오르셨다고 하여서 한양에부터 쫓아오는 길이나이다.”

“내가 자네를 얼마나 찾았는지 알고 있는가.”

조광조가 반가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사람들과 접촉을 금지하기 위해서 방책을 두르지 않았다면 두 손을 마주잡을 정도의 반색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다 이제야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나으리께오서는 쇤네가 불가촉(不可觸)의 천민임을 모르시나이까.”

불가촉 천민.사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 나라의 고위 대신인 대사헌 조광조와 지금까지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조광조 일생일대 최고의 수수께끼 인물인 피색장(皮色匠).짐승의 가죽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갖바치와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불가촉의 신분이었던 것이었다.그러나 조광조는 일개 갖바치에 불과한 사내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1년 이상이나 수소문하였던 것이다.그러나 사내의 행방은 묘연하였다.수표교 근처에서 피전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하던 갖바치는 하루아침에 홀연히 사라져 버렸으며 산중에 들어가 수도를 한다고도 하고 사물놀이패가 되어서 전국을 떠돈다고도 하는 헛소문만 무성하였던 것이다.이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기록은 조광조의 문집 부록편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도성 안에 남다른 인격을 지닌 피장이 한 사람 있었다.조광조는 진작부터 그 인물을 알아보고 학문에 관해서 묻거나 같이 자면서 시국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가까이 지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피장의 능력이 뛰어난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 조광조는 어떻게든 그를 관직에 추천하려 하였으나 그는 조광조의 제의를 사양한 후 자취를 감추었다.이름 석자도 알리지 않은 채.”
2004-03-2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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