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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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04 07:59
입력 200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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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낚시질을 하고 있던 강상(姜尙),즉 강태공을 보자마자 바로 그가 점쟁이가 말하였던 ‘반드시 도움이 될 인재’임을 꿰뚫어본 문왕은 그를 도성으로 데려와 국사(國師)에 임명한다.

강상이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게 된 데는 문왕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인물임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이었다.

강태공의 노력으로 주족(周族)은 발전을 거듭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는 한편 천하의 3분의2를 장악하여 상을 멸망시킬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다.마지막으로 상을 멸망시킬 계획만을 남겨둔 문왕은 큰 병에 걸리게 되는데,그는 자신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 희발(姬發)을 불러 세 가지를 부탁한다.

유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 추앙받는 희창 문왕이 남긴 그 유명한 세 가지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좋은 일을 보면 게을리 하지 말고 즉시 가서 행해야 한다.둘째,기회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재빨리 잡아야 한다.셋째,나쁜 일을 보면 급히 피해야 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즉시 여기서 나부터’ 시작하라는 문왕의 행동철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문왕이 죽자 강태공은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마침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것이다.

술에 만취하여 읊었던 조광조의 시조는 자신을 강태공에 비유하고 중종을 문왕에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자신은 강태공처럼 임금인 중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중종은 보이지 않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빈 배(虛舟).

함께 힘을 합쳐 중종을 유가에서 이상적인 군왕으로 추앙하고 있는 성천자로 만들고 자신은 문왕을 도왔던 강태공처럼 정치와 군사를 통괄하는 개혁가가 되고 싶었던 조광조.그러나 그러한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빈 배만 남아 있구나.그뿐인가.어느덧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빛에 물차는 제비들,즉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정상배(政商輩)만 오락가락 하고 있을 뿐이로구나.

만취하여 읊는 조광조의 시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일행은 갑자기 숙연해졌다.정치를 개혁해보려던 젊은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반역죄로 갇힌 죄수가 되어 텅 빈 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처연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고 나서 조광조는 다시 땅을 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아 우리 상감이 보고싶다.아아 우리 상감이 어찌 이를 알리오.”

그때였다.

갑자기 술을 마시던 김식이 술병을 쥐어들었다.그리고 술병을 거꾸로 세워 술을 쏟기 시작하였다.술병 속에서 술이 쏟아져 땅에 엎질러졌다.

“무슨 일인가.”

보고 있던 김구가 크게 놀라 이를 만류하여 물었다.간신히 술을 얻어 마시긴 하지만 밤을 새워 마시기엔 턱없이 부족하여 아까운 술을 일부러 쏟아버리는 김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식이 울고 있는 조광조를 향해 날카롭게 말하였다.

“쏟아버린 술을 다시 술병에 담을 수 없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가 없는 법이오.조대감.”

조광조를 힐문하는 김식의 말은 준엄하였다.

“대감,우리는 이미 쏟아버린 술이오.엎질러진 물이오.”

김식은 쏟아버린 술로 흥건히 젖어 있는 흙을 두 손으로 떠올려 조광조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보시오,대감.이미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소이다.”
2004-03-04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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