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없는 성장](1)노동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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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2-25 00:00
입력 2003-12-25 00:00
●내년에도 고용 크게 늘지 않을 것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은 내년 전체 취업자 수가 2260만명으로 올해보다 47만명(2.1%)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절대 규모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올해 감소세를 보인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높은 게 아니다.취업자 수(일자리)는 1999년 35만 3000명,2000년 86만 5000명,2001년 41만 6000명,2002년 59만 7000명 등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해 왔으나 올해에는 거꾸로 3만 7000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연구원의 계산만큼 일자리가 늘어날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한국은행 관계자는 “올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기업들이 인력을 많이 덜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 노동력이 많은 상태”라면서 “이 때문에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추가 채용할 필요성이 적어 고용사정이 눈에 띄게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상했다.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상장·등록사 41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채용시장 조사에서 기업의 38.3%가 ‘경기가 풀리더라도 채용을 늘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실업률 역시 올해 예상치(3.4%)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경기가 좋아지면 구직을 포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통계기법상 실업률 수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성장이 일자리를 뒷받침하지 않는 현상은 세계경제에 공통된 흐름이다.미국의 경우,확연한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비(非)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당초 예상치(15만명)의 3분의1 수준인 5만 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실업률도 10월(6.0%)과 비슷한 5.9%에 달했다.특히 서비스업에서는 6만 4000명이 늘어난 데 반해,제조업에서는 1만 7000명이 줄었다.
●따로 노는 경기회복과 고용확대
전문가들은 국내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이유로 ▲설비투자 부진 ▲국내 공장의 해외이전 ▲일부 기업에 편중된 경제성장 등을 꼽고 있다.특히 반도체·석유화학·IT(정보기술) 등 성장주도 산업이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장치산업’들이라는 게 경기회복과 고용확대를 따로 놀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또 비용절감 등을 위해 상시고용 인원을 최소화하고 임시직·계약직을 늘리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고부가가치형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특히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현재 국내 고용구성비는 서비스업 70%,제조업 20%,농림수산업 10% 등으로 서비스업 비중이 선진국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다.대한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전체 서비스업에서 컨설팅이나 연구개발 등 제조업을 지원하는 비즈니스 서비스업 비중은 6.9%에 불과하다.미국(13.0%),영국(20.0%),독일(17.1%) 등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반면 음식·숙박·부동산업 등 소비 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1%로 미국(15.2%),영국 (14.3%),캐나다(13.0%)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노동연구원 이원덕 원장은 “컨설팅·연구개발·법률 등 다른 사업을 지원하는 형태의 비즈니스 서비스업과 의료·교육·영화 등 복지 및 문화 관련 서비스업의 수준이 너무 뒤처져 있어 서비스업 자체는 물론 제조업의 고용창출까지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균 기자 windsea@
2003-12-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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