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먹통
기자
수정 2003-12-15 00:00
입력 2003-12-15 00:00
우리 일상생활에서 직선을 그려준 것은 먹통 자네였지.줄감는 실그릇과 먹솜 담아둔 먹솜그릇으로 이뤄진 간단한 도구지만 먹줄 주면 직선이 그려지고,선따라 연장을 대면 굽은 재목도 반듯한 기둥이 됐지.그런데 자네 요즘 인터넷경매사이트에서 값이 꽤 나가는 골동품이 됐더군.얼마전까지 목수 가방에 대패,자와 함께 필수품으로 담겼던 자네가 골동품이라니 격세지감일세.
미안한 말 한마디.자네 몰골 시커먼 게 죄라네.곧음을 잉태하고 있건만 사람은 까만 모습만 빌려다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붙였지.전화가 안 들려도 먹통,인터넷이 안 돼도 먹통,국가전산망이 다운돼도 먹통이라고 하지.똥통,뜨물통,밥통….당하에 내쳐진 조강지처처럼,요긴하게 쓰이다 심통사납게 내돌려진 통자 돌림 동무가 많으니 쓸쓸해 하지는 말게.곧음의 사회공학도,반듯함의 행동미학도 찾아보기 어려운 먹통같은 세상사에 불현듯 자네 생각이 나 횡설수설했네.
강석진 논설위원
2003-12-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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