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바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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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0-27 00:00
입력 2003-10-27 00:00
“햐,고 녀석 참 눈도 밝다!” 바느질감을 앞에 놓고 어린 조카에게 바늘귀를 꿰어달라고 부탁하곤 하시던 큰어머니께서 바늘을 받아들고 탄식처럼 하시던 말씀이다.연로하셨던 큰어머니께서는 안경을 쓰고도 늘 눈앞이 침침하다며 양미간을 모으곤 하셨다.휑 뚫린 바늘귀에 실을 꿰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였지만 철없는 조카는 어른의 감탄에 뭐 대단한 일을 했는가 싶어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었다.

요즘 큰어머니가 자주 생각나는 것은 나도 바늘귀를 꿸 때는 아이를 부르게 되었기 때문이다.책을 읽을 때도 안경을 쓰건만 글의 의미보다 글자 해독 자체가 더 힘이 든다고 느낀다.글자와의 신경전 때문일까.겨우 읽어놓은 내용도 머릿속의 저장기간이 예전 같지 않다.그래서 예부터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했던 것인가 보다.



바늘귀를 꿰어 주는 아이에게 말한다.눈 좋을 때 공부 많이 하라고.책 많이 읽어두라고.그러나 아이는 헤실헤실 웃기만 한다.바늘귀가 안 보일 때 깨닫는다면 너무 늦을 텐데도 아이는 도무지 심각한 기색이 없다.그러나 어쩌리,나도 큰어머니의 탄식을 알아듣지 못했으니.

신연숙 논설위원
2003-10-2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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