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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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0-14 00:00
입력 2003-10-14 00:00
오래 전부터 사무실 캐비닛 위에 햇빛을 못보고 지내는 자그마한 선인장이 있었다.몸집은 작아도 내뻗은 가시는 바늘로 써도 될 듯 억세고 길어 고절(孤節)함마저 느끼게 했다.

달포전 ‘밥’도 못먹고 지내는 녀석이 측은해 물을 준 뒤,햇볕이 비껴드는 창가로 옮겼다.푸르름을 많이 잃고 있었지만 조금씩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1주일쯤 지나니까 밑둥부터 짓무르기 시작한다.시커멓게 괴사(壞死)하는 부분이 번지더니 마침내 몸뚱이 전체가 폭삭 가라앉았다.가시만 덩그러니 남게 될 때까지 썩어내리는 선인장을 지켜보면서 “괜한 짓 했다.”는 후회가 몇번이나 들었다.제대로 살릴 방책도 없이,잘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의욕만 앞세워 물 주고 햇볕 쪼이다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몽땅 빼앗아 버린 것이다.화분에 바늘을 잔뜩 꽂아놓은 것처럼 변한 가시들이 “너의 미련함을 알라.”고 콕콕 쑤시는 것 같다.

강석진 논설위원
2003-10-1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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