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재신임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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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0-14 00:00
입력 2003-10-14 00:00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 이후 실시된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신임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처음 42∼57% 선이었던 ‘재신임’응답이 12일 발표된 SBS조사에서는 60.2%를 기록했다.이대로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노 대통령은 분명히 재신임받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는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최근 20%대로 떨어졌다가 지난 8일 내일신문 조사에서 16.5%로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지지도는 낮지만 “재신임하겠다.”는 우리 국민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오는 12월 15일 전후 재신임만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방법과 시기,신임 여부에 따른 거취 문제까지 밝혔다.이를 두고 각 정당이 제각각의 반응을 보여 앞으로 어떻게 합의돼 실시될지는 미지수다.분명한 것은 처음엔 최측근인 최도술 전 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에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가 11일 기자회견때는 야당과 보수 언론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추가한 뒤13일 시정연설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평가를 국민에게 주문하고 있는 점이다.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뿐 아니라 방법과 시기를 이렇게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으로서는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너무 큰 부담이다.어느 누구도 탈권위주의적이며 지역주의와 정경유착의 부패고리와 단절하는 정치개혁 노선에 반대하지 않는다.이런 우리 시대의 개혁요구와 그의 순수성을 믿고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그렇지만 지난 8개월 동안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박수를 보낼 수만 없는데서 고민이 생긴다.‘재신임 국민투표’는 후보의 정당과 정책,그리고 개인 능력을 비롯한 인격 전반에 걸쳐 묻는 선거와 다른데도 노 대통령은 그런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반대하면 혼란이 걱정되고,찬성을 하면 지난 8개월 동안 잘한 일 뿐 아니라 잘못한 점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부여해 수용하는 것이 된다.

이런 와중에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이 ‘재신임 정국’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 보지도 않고 환영부터 했다가 유보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여당이 분열되고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인데도 30%대의 지지층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한나라당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참여 정부의 잘못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서 가장 먼저 찾아진다.노 대통령 스스로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잘 나서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과 시대의 물결이 저를 대통령으로 택했다.”고 시정연설에서 밝혔다.그렇다면 국정을 운영하는데서 수시로 국민의 뜻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이번 ‘재신임 선언’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비서실장조차 발표 1시간 전에야 알 정도로 매사에 독단적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칫 국정중단 사태까지 우려되는 이런 중대사에 대해서는 사회 원로들과 각 정당 지도자들,그리고 지지자들과도 의논해야 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산적한 국정현안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 하나 제시하지 못해 사태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참모들의 잘못도 크다.반대파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한지지자들을 설득해 함께 가려는 노력 역시 부족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물론 수긍한다.건전한 비판보다 사사건건 무조건 반대부터 한 사례는 많다.그러나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먼저 안에서부터 찾는 것이 순서다.재신임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냉철한 성찰이다.그런 다음 처음 국민들이 지지했던 순수함과 개혁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실천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최 홍 운 논설위원실장 hwc77017@
2003-10-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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