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책읽기에 게으름 피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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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6-09 00:00
입력 2003-06-09 00:00
출판뿐만 아니다.요즈음에 와서 이공계가 침체를 겪고 있다.나라의 과학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우수한 두뇌를 가진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의예과나 법학과를 선호한다고 한다.이런 두 가지 어둡고 불투명한 현상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차일피일 방치했다가는,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혼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국가적 폐해를 겪게될 것이 틀림없다.목소리를 키울 것이 아니라,두뇌를 키워야 할 때인데,어찌된 셈인지 목소리 크고 말 많은 사람만 똑똑하고 잘났다는 평판을 듣는 사회가 되어버렸다.의예과나 법학과를 선호하는 밑바탕에는 일생을 담대하거나 활력 있게 살기보다는 큰 굴곡이나 모험을 겪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욕구도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
엊그제 어떤 대기업이 신 경영 선포를 하면서,천재급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신선하고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오로지 수출로 먹고 살고 또 살아가야 할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통찰력으로 꿰뚫어 본 결과가 아니면,나올 수 없는 말이다.그 기업은 이전에도 해외에 나가있는 이공계 두뇌들에게 광범위한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었다.이공계가 이처럼 곁부축을 받아야 할 만큼 전반적인 침체를 겪게된 원인 중에는 오늘날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인재들 스스로 만들어 낸 안이함에도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이를테면 시간에 쫓기고 있다 하더라도 이공계 지식 섭취의 편중 현상이 너무나 두드러졌던 나머지 창의력의 원동력으로 일컫는 상상력의 궁핍을 겪게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읽기는 무진장으로 읽는데,전문 서적에만 치우친 독서가 아니었는지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상상력의 활달한 유동성을 유지하려면,가급적 그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을 제공하고,더불어 인접 학문에 대한 관심이나 예술적 에너지를 축적하고,접근력을 높여 주는 제도적 배려가 필요하다.회화,조각,건축,음악,무용,시와 소설,심지어 야생화의 생태까지도 보고 읽는 것은,그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그것에서 얻어진 감동과 교감에서 잉태되는창의력으로 보답을 받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다.창의력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과 생태계 관찰에는 가슴속에 가라앉아 잠자고 있는 상상력을 충동질해 주는 요소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이 박혀 있다.당장 바쁘다 해서 그것을 지나치게 되면,어느새 큰 것을 놓치는 대과와 마주치게 된다.책을 읽는 사회만이 나라를 풍요롭게 만들고 바로 세울 수 있다.출판사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출판사를 경영하는 사람의 어깨가 축 늘어지면,남는 것은 소모적이고 피폐한 사회뿐이다.의학을 하든 이공계에 몸담든 책을 멀리하면,나중에 남는 것은 알량한 손재간뿐이지 않겠는가.
김 주 영 소설가
2003-06-0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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