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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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5-12 00:00
입력 2003-05-12 00:00
‘스승의 날’인 15일을 앞두고 학부모의 수심이 어느 때보다 깊다.

충남 보성초등학교 교장자살 사건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 등 일선 교육현장의 유례없는 갈등 속에서도 ‘촌지 스트레스’는 여전하기 때문이다.일부 학부모 단체는 교원단체 구성원들이 힘겨루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번 ‘스승의 날’을 계기로 촌지 거부 등 자정운동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1학부모 “강사몫까지 200만원”

교육계의 촌지 수수 풍토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여전히 중압감을 호소하고 있다.부유층 학부모를 중심으로 고액의 촌지수수 행태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데다 유치원에서부터 학원 강사에게까지 ‘인사’를 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교육실천학부모회에는 최근 며칠 사이 학부모 상담전화가 하루 평균 5∼6통씩 걸려오고 있다.전교조와 각 지역 교육청 등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하루 수십건씩 관련 글이 오른다.

아들이 서울 D고 1학년인 김모(52·여·강남구대치동)씨는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 선물 비용으로 200만원을 준비했다.김씨는 “학원 강사만 영어·수학 등 5명”이라면서 “또래 다른 학부모도 최소한 이 정도는 준비한다.”고 귀띔했다.고교 2학년생 아들을 둔 박모(53·여·관악구 신림동)씨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지만 혹시 내 아이가 차별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학교 선생님에게는 20만원짜리 상품권을,3명의 학원 강사에게는 각각 15만원짜리 선물을 주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명품 가방을 택배로 전달”

일부 학부모들은 촌지 경쟁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 선물’을 마련하고 있다.서울 B중학교 1학년 학부모인 송모(48·여·강동구 명일동)씨는 “몇몇 학부모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10만원씩 모아서 ‘버버리’ 셔츠와 지갑을 담임선생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택배 선물도 등장했다.유치원 자녀를 둔 김모(40·여·강남구 압구정동)씨는 “학부모 사이에 100만원짜리 명품 루이뷔통 가방이 ‘스승의 날’ 선물로 인기가 좋다.”면서 “직접 건네주지 않고 주로 택배로 보낸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불편한 마음

많은 교사들은 고액의 촌지나 선물이 일부 소수의 부유층에 국한된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경기 C초등학교 남 모 (26·여) 교사는 “부도덕한 스승으로 몰리는 스승의 날이 차라리 없어졌으면 속이 편하겠다.”고 말했다.서울 불암중학교 김진수(54) 교사는 “현재 담임 교사보다는 지난 1년동안 가르쳐준 교사를 찾아 정성이 담긴 단출한 선물을 건네는 것이 ‘스승의 날’을 뜻깊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교단 갈등을 자정 운동으로

참교육실천학부모회는 11일 성명을 내고 “잇속챙기기로 전교조·교단 싸움만 벌이지 말고 스스로 촌지거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다.박경양(46) 부회장은 “스승의 날을 학부모·학생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책거리 잔치’ 형식으로 바꾸는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 3년생 아들을 둔 이모(45·여)씨는 “학년이 마무리되는 2월 말로 스승의 날을 옮기면 부담이 훨씬 덜할 것”이라면서 “촌지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학부모들의 가장 큰 바람이라는 점을 전교조·교총·교장단 등이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전교조 송원재(45) 대변인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촌지 근절 등 ‘교사 윤리강령’을 발표하고 부유층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촌지거부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장택동 이영표기자 tomcat@
2003-05-1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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