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신랑 리콜

“요즘 뭐 해.” “응,전에 하던 거….”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음,그런데 저 친구가 전에 하던 게 뭐더라.아차,그냥 논다는 말이잖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과 근황을 묻고 헤어진 뒤 그의 말을 되짚어 따져보니 여전히 실직 상태라는 뜻이었다.

조기 퇴직이 보편화되다 보니 가까운 친구들도 하나,둘 직장을 그만둔다.한 친구는 대학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조선왕조실록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매달리면서 몇 권의 책도 펴내 다행이다 싶은데,수입은 별로라고 한다.

어느 날 그를 만났다.“직장 생활이 어떠냐.” “다 그렇지 뭐.이 꼴 저 꼴 다 보고도,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지.” “월급을 거저 주냐,싫은 것 참는 값이 바로 직장인의 월급이다.” “그래 맞다.” 모처럼 월급쟁이의 행복(?)을 논하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중매쟁이 선배,우리 신랑 ‘리콜’해줘요.”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돈 안 되는 책 낸다고 유세 떠는 남편의 하자를 보수해달란다.술이 확 깼다.

김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