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서도 고장난 시계 고치러 와요”‘93세 현역’ 이원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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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4-16 00:00
입력 2003-04-16 00:00
“젊은이들에게 참다운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싶습니다.제가 기능대회에 참가하면 젊은이들도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16일부터 22일까지 충남 천안에서 열리는 충남지방기능경기대회 시계수리 분야에 참가하는 이원삼(李源三·93) 할아버지.그는 백수(白壽·99세)를 앞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자뻘의 젊은이들과 시계수리 기능 경연에서 어깨를 겨룬다.시계수리 업계에서는 ‘박사님’으로 불리는 이 할아버지는 75년의 세월을 시계수리에 바쳤다.

1910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 때문에 막노동을 시작했다.만 18세 때 시계 고치는 일이 ‘막노동보다 쉬워 보여’ 무작정 일본 시계수리책을 사다가 독학을 시작했다.6개월만에 자신감을 얻은 할아버지는 시계수리점을 열었고 시계수리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24살 때 공업도시인 청진으로,6년 뒤 개업을 위해 다시 중국 만주로 갔다.광복 후 49년 서울 충무로에서 개업을 했으나 전쟁통에 부산으로 잠시 피란 갔다가 58년 서울 남대문시장에 시계수리점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옛날에는 하루에 시계부품을 40여개씩 만들기도 했지.지금은 디지털 시계 때문에 일감이 별로 없어요.”

이 할아버지는 현재 ‘중증 시계’만 고치고 있다.따라서 개인보다는 시계수리업체들을 상대하고 있다.일반 시계수리업체들이 고치지 못하는 시계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곧바로 돌아간다.그의 실력은 소문이 퍼져 외국에서도 시계수리를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이 할아버지는 늑막염으로 팔을 잘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시계수리를 위한 일념으로 병마를 이겨내기도 했다.

“시계수리를 위한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쯤 팔이 하나밖에 없고,앞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한가지 일에 취미를 붙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지요.”

김용수기자 dragon@
2003-04-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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