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경쾌한 붓놀림/ 서양화가 신수희 ‘빛을 넘어서’전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3-04-08 00:00
입력 2003-04-08 00:00
“아버지의 초서체 붓놀림은 경쾌한 속도로 흰 종이 위에 추상화면을 만들어낸다.나는 그것을 찢어서 내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푸른 색 물을 들인다.이렇게 서너 작품도 만들기 전에 아버지는 그만 가셨다.귀거래사를 써 주시기로 나하고 단단히 약속하셨는데….” 서양화가 신수희(58)의 작품에는 본인도 이야기하듯,서예가였던 아버지의 흔적이 역력하다.특히 초서에 능했던 작가의 아버지 고(故) 집의당 신집호 선생은 평양사범 출신의 교육자로,선전(鮮展)에서 특선을 차지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서예가였다.

9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신수희-빛을 넘어서’ 전에서는 작가의 이런 개인사적인 배경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일필휘지로 내닫는 서예의 붓끝처럼 작가의 붓놀림은 경쾌하다.여러 겹의 가로 줄들을 이용해 자연의 푸른 색채를 풀어놓는다.얼핏 보면 어린 아이의 낙서 같기도 하지만,찬찬히 뜯어 보면 신기루처럼 경쾌한 빛줄기가 인도하는 경이로운 꿈과 몽상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작가의 그림 안에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해맑은 동심이 숨쉰다.

20대부터 추상화로 방향을 정한 작가는 미국 화가 리처드 디번콘의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그런 만큼 두 화가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캘리포니아 태양 빛의 특질을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포착해낸 디번콘의 그림에서는 추상표현주의적인 붓놀림과 힘찬 서체적인 선이 눈에 띈다.신수희의 작품 또한 ‘빛을 넘어서’라는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 빛과 자연에 대한 감성을 드러낸다.이번에 선보이는 ‘미시령-겨울’‘동틀녘’‘대양을 건너’ 등 푸른 색조의 그림들에서는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운필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제를 몰고 다녔다.그중 하나가 1954년 열 살의 나이에 개인전을 열어 ‘천재소녀’란 말을 들은 일이다.물감 구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에 소녀 화가로 개인전을 열었으니 이야깃거리가 될 만했다.

초등학교 때 두 번,중학교 때 한 번 개인전을 연 그는 공부도 잘했다.이화여고 시절에는 대학 예비고사에서 여학생 중 전국 최고점을 받아 주목받기도 했다.그는 화가로서의 오늘,인간으로서의 오늘은 엄한 가정교육, 특히 어머니의 스파르타식 교육 덕분이라고 말한다.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부군 배순훈 교수(KAIST 경영대학원)도 정신적인 후원자.언니인 신수정 서울대 음대 교수가 유명 피아니스트가 된 것 역시 이러한 가정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9일 오후 5시 전시회 개막식에 맞춰 작가가 2000년에 받은 슈발리에 훈장 전달식도 열린다.슈발리에 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예술ㆍ문화 분야에서 독창성을 발휘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것으로,화가 이성자ㆍ김창렬ㆍ이우환,영화감독 임권택,피아니스트 백건우 등이 받았다.(02)734-6111.

김종면기자 jmkim@
2003-04-08 2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