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모난 돌이 정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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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3-26 00:00
입력 2003-03-26 00:00
보수성의 공동기저는 첫째,자유가 평등에 우선한다는 주장,둘째,교육은 규율을 강조한다는 입장,셋째,합리적 인간과 질서 있는 사회를 최우선적으로 평가한다는 입장,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보다는 원칙의 제시와 강조가 바로 보수주의의 핵심이라는 논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즉 무원칙과 파격적 결단은 보수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다.‘모난 돌이 정 맞는다.’,‘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침묵은 금이요,웅변은 은이다.’ 등의 실천적 행동규범은 바로 이같은 보수주의 입장이 확실한 증거들이다.
이처럼 보수성은 창의적 활력보다는 윤리규범이나 검증된 제도만을 고집하며 기존질서를 신뢰하고 집착하는 자기 방어적태도로 모든 사회,모든 시기에 발견되는 공통된 문화현상이다.우리사회의 유지와 보존이라는 인간의 일차적 사명에 보수성은 필수요건이 된다는 자명성 때문에 누구도 공개적으로 맞서지 못하기에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다.
한마디로 개인,집단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발견되는 공통현상이 보수성이다.비록 최근 세계화와 자유주의라는 급격한 사회변동이 일상현상으로 자리잡아 보수주의 입장이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그럴수록 역설적으로 보수주의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한다.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수주의의 특성은 혼란과 격변의 상황에서 더욱 그 존재가치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질서체계로 해당사회,해당시기 구성원들의 인식과 행동준칙으로 통용되지만 그러한 구속력은 영구불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른 내용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 간다.그러나 이같은 내용적 변화와는 달리 형식적으로는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덕목이 바로 중용(中庸)이다.인류역사가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천지혜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획일화하고 있는 세계문화는 실용적 필요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동시에 기득권 세력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단선적 문화를 수용하고 전승한 결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한 사회의 주도세력은 그 사회에 축적되어 있는 경험이나 지식 그리고 질서체계를 배우고 익히는 훈련과정을 통해 기득권층으로 편입된다.즉 기존의 패러다임에 길들여짐을 통해 지배계층은 형성되고,그리고 이러한 순응과정을 성공적으로 완료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같은 결정을 함께 선택한 무리 가운데 일부뿐이다.
따라서 선정된 소수의 성향은 더욱 교조적 보수성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모르기에 용감할 수 있지,제대로 안다면 그렇지 못할 텐데!’,또는 ‘가만히 있으면 둘째라도 갈 텐데!’라는 말은 무식과 용기를 동일시하여 소극성과 수동성을 조장하고 있다.따라서 능동성이나 적극적 태도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엮어지고 있다.
물론 안다는 것은사회질서나 체제의 형성과 유지에 실질적 힘을 제공하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험과 지식의 역할은 절대적이다.그럼에도 서양의 ‘지식인의 아편(阿片)이나,동양의 ‘곡학아세 (曲學阿世)’라는 표현은 지식의 부정적 경향을 경계하고 있으며,오늘 우리사회에 가장 값진 가르침이다.
따라서 보수성과 진보성을 상호 배타적 내용으로 간주해버림으로써 각각의 고유의 미와 기능을 사장해버릴 것이 아니라 보완성에 주목하여 균형 잡힌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 길은 바로 과거의 전통과 발전의 전망을 접합시키는 ‘계승과 발전’이라는 지혜이다.
김 어 상
2003-03-2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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