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의과대로 간 까닭은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2003-02-15 00:00
입력 2003-02-15 00:00
불가사의였다.올해 그 좋다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한 수험생이 두 명이나 등록을 안 했다.서울대 법대를 합격해 놓고도 다니지 않겠다니 세상은 의아해 했다.궁금증은 곧 풀렸다.성균관대 의과대학에 복수로 합격한 두 합격생이 나란히 서울대 법대를 포기하고 성균관대 의과대학을 선택했다.모르면 모르지만 등록금이 3배나 많을 테지만 그들은 의대를 찍었다.적성 때문도 결코 아니다.법대는 인문 계열이고 의대는 자연 계열로 구분이 명확하다.실제로 한 수험생은 양쪽 학문에 모두 흥미가 있다고 했다.

성균관대 의대는 1997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올해에야 겨우 졸업생을 냈다.의대치고는 저만큼이다.대학의 지명도라면 더더욱 비교가 안 된다.지금 내각의 장관급 이상 고관 25명 중 18명이 서울대 출신이다.그리고 서울대 18명 가운데 8명은 또 법대다.2000년 총선이 끝나고 16대 국회가 개원하던 날 273명의 의원중 20%에 육박하는 53명이 법대였다.세상에선 흔히 서울대 법대를 ‘설법’이라고 부른다.권력과 부(富)와 명예의 요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그런데 신생 의대가 설법을 제치고 선택받았다.

우연이 아닐 것이다.천하를 평정한 설법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까닭이 없을 리 없다.사법시험 제도와 무관치 않다.사시 1000명 시대가 되면서 설법의 독보적 위치가 손상됐다.지난 연말에 발표된 사시 합격자 998명 가운데 설법은 177명에 불과했다.합격자를 지금처럼 정원이 아니라 점수로 뽑던 81년 이전엔 60%에서 많게는 90%가 설법이었다.67년엔 아예 전부였다.설법은 사시 여부를 떠나 누구나 그냥 최고였다.지금은 어림도 없다.전체 합격자의 겨우 17.7%다.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검증을 거쳐야 하는 평범한 그들이 됐다.

사회의 민주화도 설법의 위상 변화를 재촉했던 것 같다.세속적인 3대 욕구라면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차례로 꼽는다.권력엔 부가 따르고 그러다 보면 명예를 얻는다는 얘기일 게다.권력에 쉽게 다가갈 수 있던 설법이 권능을 부릴 수 있었던 사회 시스템이다.사람들의 권리 의식이 시스템을 바꾸어 놓았다.권력형 비리를 용납하지 않게 됐다.고도의 사회 의식이 권력의 결정이라도 한번 되새김하는 상식을 보편화시켰다.엘리트의 권위를 부인하기 시작했다.권력이 부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 버린 것이다.

인문 계열의 엘리트가 뒤뚱거리는 사이 자연 계열의 ‘최고’는 특유의 엘리트 의식으로 결속력을 다졌다.2000년 7월 의약분업 파동이 시험대였다.인술을 자처한 의사가 환자 치료를 거부했다.비판받아 마땅했다.결과는 거꾸로였다.사회적 지위는 높아지고 영향력은 강화됐다.수가가 세차례에 걸쳐 25.5%나 오른다.1만 9018개던 동네 병원은 2만 5000여 곳으로 늘었다.의료 서비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지렛대가 됐다.권력이 아니었다.부와 명예가 일을 해낸 것이다.

의대로 간 까닭은 권력과 부와 명예의 역학 변화를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권력이 있어야 부가 따르고 명예를 누리는 시대는 끝났다.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누리는 행태가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 됐다.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나눠 가져야 하는 시절이 됐다.

의대를 선택한 또 다른 수험생은 ‘미래에 대한 진로가 확실히 보장되는’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당장은 설법이라는 명예를 얻을 것이요,나중엔 권력을 가질 수도 있으련만 보다 확실해 보이는 부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세상의 흐름을 읽었다.독점의 시대가 가고 함께 나눠 갖는 분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정 인 학

chung@
2003-02-15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