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核 다자협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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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2-12 00:00
입력 2003-02-12 00:00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측의 정대철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핵 위기의 외교적 해결방안으로 다자주의의 틀안에서 상호 대화를 활용하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북핵 해법과 관련,최대 관심사는 지난달 말 임동원특사의 방북을 통해서도 알려진 대로 북한과 미국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북·미 양자방식의 해결책이냐 아니면 북,미를 포함한 여타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방식의 해법이냐이다.

북한은 자국의 안보를 담보하는 것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길뿐이라고 강조하며 미국과의 양자 해결방식을 선호하고 있고 미국은 국내외의 정치·경제적 부담을 덜려는 목적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포함하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국 등이 참여하는 10여개국의 다자회의체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양자해결 방식이든 다자해결 구도이든 그 나름대로의 명분과 실리가 있겠으나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 본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다자간 협의’에 의한 해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유럽의 군비통제의 역사를 보더라도 북한과 미국처럼 상호간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양자방식에 의한 협의와 협상은 성공하기가 어렵고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파국을 맞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양자방식의 동서상호 균형감군협상(MBFR)과 다자방식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으나 전자는 결실을 맺지 못하였는 데 반해 후자는 성공적으로 타결돼,후에 유럽지역의 냉전질서 해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여기서의 다자방식 성공의 관건은 미·소 양측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을 중립적인 위치의 유럽국들이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기 때문이다.세계 유일 초강국으로서 일방주의를 내세우는 미국과 직접 맞닥뜨리는 것은 상대적 약소국인 북한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둘째,북한이 주장하는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이 그들의 믿음처럼 북한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역사적으로도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1934년),중·소불가침조약(1937년),독·소불가침조약(1939년),일·소불가침조약(1941년) 등 수많은 조약이 있었으나 후에 ‘가침’조약으로 돼버린 쓰라린 역사적 경험이 있다.1966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타슈켄트에서 상호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지만 카슈미르 분쟁은 더욱 치열해져 가기만 했다.이 같은 사실은 국제사회에서의 평화가 ‘불가침조약’이라는 종이 문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서 실질적인 화해와 긴장완화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끝으로 멀리 찾아 볼 필요도 없이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핵문제가 해결의 접점을 찾았던 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가 바로 양자방식의 해결책이었다는 사실이다.그러나 본합의를 북한과 미국이 체결하였기 때문에 양자해법의 범주에 든다고 보는데 최근에 불거진 북핵문제 악화상황은 바로 양 당사자간의 대결국면을 조절할 장치가 없는 데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네 삶의 지혜인 속담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암묵적으로다자해결 방식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이 94년 미국과 양자방식의 해법을 모색하여 결실을 본 제네바합의를 다시 손보아 보다 포괄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이제는 다자해결 방식을 시도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김 경 수
2003-02-1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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