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위기의 농업·농촌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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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11-13 00:00
입력 2002-11-13 00:00
지금 농촌은 희망을 잃고 신음하고 있다.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농산물 수입개방이 전면화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통계를 보면 농가소득은 9.6% 증가했으나 농가부채는 무려 122%나 급증했다.도시가구 소득을 100으로 볼 때 농촌가구 소득은 75.9에 그친다.60세가 넘은 노인이 농촌 주민의 절반을 넘어섰다.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농촌은 이미 활기를 잃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부는 농업회생 대책을 내놓는 대신 오히려 농업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지난 여름 한·중 마늘 비밀협상이 폭로됐다.중국에 우리 마늘을 내준 것이다.마늘이 무너지면 마늘만 망하는 게 아니다.마늘농가가 양파로 작목을 전환하면 양파가,보리로 전환하면 보리농사가 망한다.밭작물 전체가 도미노 현상처럼 무너지는 것이다.
지난 달 칠레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은 농촌에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다.마늘문제가 회오리바람이라면 칠레와의 협정은 태풍에 버금간다.칠레는 세계 과일 시장의 1,2위를 차지하는 과일 강국이다.조만간 국내 과수 산업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핵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쌀을 개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쌀 재협상이 2004년으로 예정돼 있다.농촌은 농업소득의 52%를 차지하는 쌀이 개방되지 않아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다.
계절이 뚜렷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도 하루 세 끼중 두 끼를 외국 농산물에 의존하는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한 나라에서 이제 민족의 혼이요,국민의 생명줄인 쌀마저 개방된다는 건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그렇다면 누구의 말처럼 경쟁력 없는 농업을 포기해도 괜찮을까.값싼 외국농산물 먹는 게 더 이익일까.
처음에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한 번 농업이 무너지고 나면 국제 농산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 곡물기업이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릴 것이 분명하다.지난 94년 일본에 흉작이 들었을 때 쌀값이 3배 가까이 오른 예에서도 잘 알 수 있다.뿐만 아니라 농업의 붕괴는 농업이 갖고 있는 공익적 기능(23조 9000억원의 경제적 효과,2002년 농업기반공사 자료)을 송두리째 앗아갈 것이다.또 일 없는 농민이 도시로 대거 이주하면서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15만명이나 되는 농민이 대거 상경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농촌 현실에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다.지을 작목이 사라지고,농가부채로 파산한 농민이 어떻게 말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정부는 답해야 한다.위기에 빠진 농업·농촌을 살릴 것인지,아니면 계속되는 농업희생 정책으로 파탄낼 것인지를 이번에는 답해야 할 것이다.
이호중 전국농민회 총연맹 정책부장
2002-11-1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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