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국제학술회의서 주제발표한 佛석학 장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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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9-30 00:00
입력 2002-09-30 00:00
지난 25일 내한한 프랑스의 석학 장 보드리야르(73)는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미디어­시티 서울 2002’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미지의 폭력’이란 발제문을 통해 현대의 문화현상을 진단했다.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와 문화에 대한 독창적이고 극단적인 분석을 시도해 온 사상가.이미지의 폭력성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의 논지는 여러 갈래로 뒤얽혀 난삽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다음은 주제발표 내용 요지다.

오늘날 모든 것은 이미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현실은 과다한 이미지 아래 실종됐다.그런데 우리는 이미지 자체도 현실의 영향으로 사라진다는 점을 잊고 있다.이미지는 대부분 그 독창성,이미지로서의 고유한 존재를 빼앗긴 채 수치스럽게도 현실과 결탁한다.

비잔티움의 우상파괴론자들은 그 의미를 지우기 위해 이미지를 파괴하려 했다.오늘날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우리가 우상파괴론자가 됐다.의미를 퍼부으면서 이미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의미로 이미지를 죽인다.보르헤스의 우화 ‘거울의 군중’에서는 각각의 닮음과 재현 이면에 정복된 적,쓰러진 기발함,죽은 대상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우상파괴론자들은 우상이 신을 실종시킨다는 것을 예감했다.오늘날에는 신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지 뒤로 사라진다.누가 우리 이미지를 훔칠 위험,비밀을 강요할 위험은 더 이상 없다.여기에 바로 우리의 궁극적인 도덕성이자 외설성의 사인(死因)이 있다.

요즘 대부분의 미디어나 사진 이미지는 인간조건,즉 인간이 놓인 상황의 재난이나 폭력만을 반영한다.이 재난이나 폭력은 그 이미지에 의미가 부가되면 될수록 감동이 줄어든다.이미지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이미지 고유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재난과 폭력은 이미지를 통해 상업적으로 되풀이되는 주제다.패션과 사교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의 스펙터클’이다.

이미지에 가해지는 폭력 즉 이미지 왜곡은 바로 합성 이미지의 폭력과,영상이 드러내는 모든 최신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폭력으로 귀결된다.이미지의 상상력은 여기서 끝났다.이미지가 갖는 근본적인 ‘환상’이 끝난 것이다.합성과정에서 지시대상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보와 가상성의 폭력인 이미지의 폭력은 실재를 사라지게 만든다.모든 것은 가시적이어야 한다.이미지는 특히 이 가시성의 장(場)이어야 한다.그러나 대부분 실재가 사라지는 대가를 치른다.뭔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미지의 매력이지만,이것은 또한 이미지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심지어 상상하기도 끔찍한 폭력적인 현실을 드러내면서 실재적인 본질은 사라지게 만든다.그것은 마치 오르페가 유리디케를 보려고 돌아섰을 때,그녀는 사라져 지옥으로 다시 떨어지는 ‘유리디케의 신화’와도 같다.그렇게 이미지가 오고감으로써 현실 세계에는 거대한 무관심이 형성된다.

이미지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사람들은 그 자신이 가혹하게 이미지로 변신한다.순간마다 읽히는 존재가 된다.정보의 조명에 과다하게 노출된 탓이다.미셸 푸코가 말한 대로 궁극적인 자아의 표현인 고백을 강요받는다.이미지를 만드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일상생활,불행과 욕망,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말하고 또 말하는 것,지치지않고 알리는 것이야말로 이미지의 가장 강한 폭력이다.

김종면기자 jmkim@
2002-09-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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