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진정한 화해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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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9-06 00:00
입력 2002-09-06 00:00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서울의 망우리 묘지공원에 가면 아사가와 다쿠미(淺川巧)라는 한 일본인의 묘지가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다.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간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어도 아직도 그의 묘지는 한국 사람들에 의해 깨끗이 관리되고 있다.그는 총독부 관리였지만 당시 한국에 건너왔던 많은 일본인들과는 달리 조선문화를 존중했고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라는 저서를 남기는가 하면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썼던 이유로 1931년 그의장례식은 많은 조선인들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그 아사가와의 이야기를 최근 일본에서 듣게 됐다.규슈 후쿠오카현 무나오카시에 있는 후쿠오카교육대학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일본교육학회 예순한번째 학술대회에서였다.대회 주제는 ‘아시아의 공생(共生)-젊은 세대의 앞으로의 한·일(일·한)관계와 인적 교류’였다.

걸핏하면 갈등이 폭발하는 한·일관계를 생각하면서 일본 교육학계가 보는 양국 관계와 교류의 전망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돌아오는 길은 몹시 머리 속이 복잡해져있었다.

심포지엄 전반부에는 초등학교의 교류에 관한 사례발표가 있었다.충남 부여군 백제초등학교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니시초등학교 학생들이 해마다 오고가며 교류하는 모습이 비디오 화면과 함께 소개됐다.니시초등학교 관계자는 “진짜 형제처럼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하면서 젊은 세대의 교류가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중학생 시절 서로 홈스테이를 하면서 교류를 했던 학생 2명이 8년 만에 재회,당시와 현재의 생각을 말하는 차례도 있었다.

분위기가 일변한 것은 8년째 한·일교환수업을 펴온 쓰쿠바대학 다니가와 아키히데(谷川彰英) 교수의 차례가 되어서였다.그는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아사가와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역사수업을 해 나가는데 반응은 차가웠다고 말을 꺼냈다.한 학생이 “아사가와는 수천만명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사죄와 배상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서 우리더러 과거를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냐.”라고 비판을 가하더라는 것이다.김치나 만화 이야기를 하면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역사 이야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로부터 같은 시각의 비판을 받는다면서 다니가와 교수는 교류를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 “한국 사람 말을 이젠 입닫고 들어선 안된다.”,“독립기념관에 가보니 고문 장면이 인형으로 전시돼 있다가 이제는 움직이는 인형으로 바뀌었더라.한국인들 지나치다.”,“한국인의 마음에는 ‘동생한테 당했다.’는 식의 원한 같은 게 있다.”는 말을 ‘솔직하게’ 토해 냈다.

8년이나 한·일 교류 사업을 열심히 펴온 끝에 얻은 결론인 셈이었다.교류가 화해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 될 수도 있다거나 교류하면 할수록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하면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게 되겠지만,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됐다.



비슷한 발언이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흘러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연단에 앉아 있는 재일동포 교육학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사회자인 그는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얼굴이 돼 있었다.심포지엄이 끝난 뒤 그와 함께 온천욕을 가는데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까요.”라고 묻는다.내가 묻고 싶은 말이라며 대답을 기다리니까,먼 바다쪽만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는다.태풍 루사 탓이겠지만 귀로에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현해탄에는 파도가 높게 일고 있었다.

강석진 정치에디터
2002-09-0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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