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과 칠판] 몇몇 잘난 제자들만 들먹이며 도취했던 나,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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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06-27 00:00
입력 2002-06-27 00:00
영서의 1학년 담임 시절,나는 영서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크게 말썽을 부리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고 담임의 자질구레한 지시에는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런 아이였다.그런 영서를 졸업 후 3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예닐곱 살 먹은 아이들을 달래기는 자장면이 제일이던 때였다.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자장면을 시켰다.얼마 뒤 초인종이 울리고 철가방을 든 청년이 쑥들어왔다.순간 청년이 움찔했다.나는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이에 “아,선생님.”하면서 고개를 숙였다.엉겁결에 인사를 받고 보니 영서였다.“어,너 웬일이냐?”순간 튀어나온 말이었다.영서의 서먹서먹한 태도가 어색했다.“아르바이트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어디 가고?”기계적으로 나는 물었다.아니 그렇게 묻지 말았어야할 것을 나는 묻고 말았다.영서의 대답이 흐려졌다.어색한 시간이 어색하게 흐르고 난 뒤 어색한 몸짓으로 영서는 돌아갔다.다음 날 나는 그 중국집에서 영서를 불러 조용하게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영서는 다른 곳으로 가고 없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교직에 입문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모든 교사들의 공통된 바람일 터이다.그릇된 바람이 나에게는 일찍부터 불어 일년 동안 담임을 하고서도 나중에 기억하는 것은 몇몇 공부 잘하는 아이들뿐이곤 했다.
이 얼마나 낯부끄러운 일인가? 내가 담당했던 학급에서 몇 명의 아이가 서울대학에 갔다고 자랑하던 그 시간에도 영서처럼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철가방’을 들고서 방황하던 제자들이 있었을 터이고 나는 그런 속사정들도 모른 채 몇몇 잘난 제자들 숫자나 들먹이면서 스스로의 기분에 도취하곤 했었던 것이다.그 후 7,8년이 지난 며칠 전,나는 영서를 두번 째로 만났다.퇴근 길아파트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이었다.“선생님.”“선생님 오랜만입니다.”지난날의 회상에 젖어 있는 나에게“군대 갔다와서 결혼하고 요즈음은 방배동에서 컴퓨터 수리하고 있습니다.”무척이나 서로가 반가워하면서도 더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일하러 가는 중입니다.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하면서 돌아서는 영서의 모습이 고생을 많이 한 듯 허름한 복장에 파리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영서와 헤어졌다.돌아오는 길,영서의 쓸쓸한 그 모습이 눈에 자꾸 아른거려 자꾸만 영서가 간 쪽을 바라보곤 했다.
최경채/ 서울상문고 교사
2002-06-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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