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고3교실/ (중)수시모집 합격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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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9-12 00:00
입력 2001-09-12 00:00
“대학에 정식 입학하기까지 6∼8개월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6월 1학기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한 고교생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합격자 7,111명 가운데 고교생이 86%로 6,139명이다.그러나 일선 고교에서는 다른 학생들의 진학지도에바빠 돌볼 여력이 거의 없다.

1학기 수시모집 합격생 대부분은 지난 1일부터 교육청과 학교의 허락을 얻어 외부단체나 대학에서 외국어와 컴퓨터 등을 배우고 있다.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처음 시행하는 프로그램이어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다.

대학 입학 전에 12학점까지 미리 이수할 수 있지만 일부 고교에서는 이러한 사실조차 모르는 실정이다.수시모집 합격자들은 수업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고교 졸업을 위해서는 2학기 중간·기말고사는 봐야 한다.

출석을 꼬박꼬박 해야 하는가 하면 외부 단체에 교육을 위탁하는 고교도 있는 등 수시모집 합격자들에 대한 관리도 천차만별이다.Y대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한 정모양(18·S여고3년)은 “최근 대학에 PC강좌를 들으러 갔는데 교재는 물론컴퓨터도 없었다”고 말했다.

J고 3년 박모양(18)도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너는대학에 합격했으니 우리 일 좀 도와달라’고 해 하루 종일교무실에서 친구들의 입시서류 정리 등 잡일만 한 적도 있다”면서 “주말에 대학에서 하는 강좌도 너무 엉망이라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J대에 합격한 임모군(18·C고 3년)은 “학교에서 사설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은 출석으로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해 막막하다”면서 “담임 선생님도 다른 친구들의 입시 지도에 바빠 상담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한 합격생은 “선생님들이 ‘너는 이미 합격했으니 시험에신경쓰지 마라’며 다른 친구들을 위해 내신점수를 잘 받지말라고 권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예비 대학 프로그램 제도가 확립돼 각 고교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일부터 16주간 예정으로 수시모집 합격생 380여명을대상으로 영어,글쓰기,교양 PC 등 ‘수시 입학자 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는 Y대 관계자는 “일부 고교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확인 공문을 요구하는 등 혼란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D고의 한 3학년 담임교사는 “1학기 합격생들에 대해고교가 방치하고 있다”면서 “내년부터 수시모집이 더 확대돼 고교 교육이 더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영우 류길상기자 anselmus@.

■“고교현실 무시…1학기 수시 폐지를”.

“일선 고교에서는 1학기 수시모집 합격생들을 지도할 여력이 없습니다” 경기고 3학년 부장 김종권(金鍾權) 교사는 “현재의 대학입시제도는 고교보다는 대학을 위한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교사는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들도 분명히 고교생이지만 다른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거의 돌보지 못한다”면서 “수시모집에 합격한 15명 중 12명은 외부기관에 위탁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업에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2학기 중간·기말고사를 봐야 한다.그럴바에야 합격한 대학에서 미리 공부할 수있도록 해 그 학점을 고교에서 이수해야 할 학점으로 대체하는 등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게 김 교사의 생각이다.

김 교사는 “한반에 한명꼴인 1학기 수시모집 합격자 때문에 다른 40명의 1학기 수업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면서 “차라리 1학기 수시모집 제도를 없앴으면 하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전영우기자 anselmus@
2001-09-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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