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대학과 身分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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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11-16 00:00
입력 2000-11-16 00:00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등 이른바 명문대의 경우 전문직이나 고위 관리직 학부모를 둔 신입생이 급증하고 있다.반면 생산직 근로자나 농어민 자녀의 서울대 입학은 급감하는 추세라고 한다.특히 고급 관리직 종사자가 자녀를 서울대에 보낼 가능성이 생산직의 30배가 넘는다는 추정치까지 나왔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 수재가 열심히 공부해명문대에 수석합격하는 사례가 흔했다.이는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가리키는 지표로 간주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인간승리’사례를 신문 사회면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가계별 사교육비 지출 여력이 입시경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다는 점이다.공교육이 제구실을 못하는 허점을틈타 족집게 과외니 해외연수니 하는 기형적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있다는 얘기다.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과외비가 심하면 2억원대라고하니 말문이 막힌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그 자체가 국민 에너지의 낭비다. 더 큰 문제는이에 투자할 힘이 없는 가계의 상대적 박탈감이다.잔디구장 한번 밟아 보지 못하고 맨땅에서 공을 찬 선수가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되긴어려운 법이다. 이정하 시인은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고탄식하기도 했지만 성적이 곧 경제력 순이라면 공정한 사회라 할 수없다.
미국의 경우 ‘차별철폐조처’(Affirmative action)란 제도가 있다.
대학입학,취업,연방정부의 사업권을 따내는 일에서 흑인이나 여성 등사회적 약자에게 일정한 쿼터를 주는 제도다. 이같은 ‘약자보호조치’에 힘입은 덕분인지 동부의 명문 예일대에서 올해 아시아계가 전체학생의 19%를 차지했다. 이 대학이 본디 앵글로색슨계 백인 프로테스탄트라는 미국사회의 주류,즉 ‘와스프(WASP)’를 위한 대학임은 잘알려진 사실이다.때문에 이 제도야말로 온갖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나름대로 미국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버팀목으로,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기계적 평등은 가능하지도,바람직하지도 않다.고위 당원과 비당원간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끝내 무너진 사회주의권의 실험이 이를 웅변한다.그러나 교육기회의 불균등으로 말미암아사회적 계층이 불공정하게 대물림하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개선되는 게 바람직하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2000-11-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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