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왜 성찰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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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7-27 00:00
입력 2000-07-27 00:00
장원 사건이 터지자마자 녹색연합은 장원을 제명시켰다.얼마후 대전대학교에서는 장원의 교수직을 해제했다.‘매우’ 신속한 대처였다.하지만…성찰하는 모습은 아니었다.누가? 장원,장원을 필요로 하던 시민단체,학교 모두 다말이다.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여성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후배가 당시 이런 말을 했다.“왜 그렇게 단칼에 장원을 잘라버리고 말지?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지만 사건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장원의 ‘공동체’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관해 말한다. 그들은 페미니즘 이론서를 그대로옮길 만큼 해박한 지식과 언변으로 무장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성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만은 아직 개발돼 있지 못하다.왜 그럴까? 여성을 인간으로 대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한국의 남성들.

여성을 인간으로 대하는 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하고 성장한 한국의 남성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보다는 조용히 남자(남편이든 애인이든)의 뜻에 따르는 여성을 더 ‘인간답게’ 느끼는 한국의 남성들. 그래서많은 남성들이‘평소 하던 대로’ 행동하거나 말하면 그것이 ‘성차별’ 이돼버리는 것이다.우리나라처럼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일상적 무시’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누리는 일상의 기득권에 민감해지지 않는다면 성폭력 같은 ‘일상적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기 감수성으로 가져가기는 불가능하다.

성폭력은 ‘관계’의 문제다.여성과 남성,권력이 더 많은 자와 적은 자,그리고 소위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다.성폭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당사자들뿐 아니라 가해자·피해자가 속한 집단에도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장원 사건의 경우 피해자인 오양,가해자인 장원 그리고 이 둘이 다 소속돼있던 녹색연합 그리고 녹색연합을 포함한 시민운동단체(여기에는 여성운동단체도 포함된다)가 ‘공동체’인 셈이다.어찌보면 90년대 이후 활기를 띤 시민운동단체를 지지해온 우리 사회의 시민들이 더 큰 의미에서 ‘공동체’에속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장원 사건은 그가 속한 공동체인 녹색연합과 시민단체에 ‘상처’를 주었으며 시민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그리고 이에 대한 대처는 지나치게 신속하기만 했다.‘장원 제명’.마치 암세포를 잘라내듯 장원을 제명하는 모습이‘우리는 깨끗해’라고 강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잘라내면 깨끗해질 문제인가?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해자’임을 극구 부인한다.발뺌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장원은 구속된후 자신의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아마 여전히 부인하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해자임을 인정할 수 없는 가해자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믿었던 인권운동가가 실은 ‘성추행범’이었다는데 ‘배신감’을느꼈다.그리고 그 배신감은 시민운동 진영으로 향했다.그것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성폭력의 책임을 당사자에게만 돌려서 그 사람을 ‘처벌’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 방법으로 우리는 어떤 자유도 얻을 수 없다.

적어도 사건을 공개하면서 그것을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받아 안아야 했다.

장원을 제명하는 것과 함께 그것이 장원이라는 특정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성찰했어야 했다. 그리고 십여 년을 함께 일해 온 동지 장원이 자신을 성찰하도록 공동체의 힘으로 거듭나야 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사과’할 힘이 생긴다.장원은 그렇지 못했다.장원의 공동체도 그렇지 못했다.오로지 장원을 ‘제거’하기에 급급했으니까.묻고 싶다.이제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지?왜 함께 성찰하려 하지 않는가!이 숙 경 @zooma 편집장
2000-07-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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