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북녘 고향에](5)함남북청 출신 이덕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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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6-29 00:00
입력 2000-06-29 00:00
지난 27일부터 금강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북간에약간의 이견이 있다는 소식에 이 할머니는 “판문점이든 금강산이든 만나는장소가 무슨 문제냐”며 혹시나 회담이 잘못될까 조바심했다.
1938년 같은 북청 사람인 고덕환씨(1975년 사망)와 결혼한 이 할머니는 46년 10월 서울에서 장사를 하던 남편을 찾아 세살배기 큰딸을 업고 38선을 넘었다.당시 할머니의 가족들은 남북이 갈리게 될지 모르니 서울로 가지 말라고 극구 말렸다.월남한 이듬해 친정어머니가 서울에 들렀을 때 이 할머니는남편과 5년 동안만 장사를 한 뒤 고향에 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차라리 그때 어머니를 붙잡을 걸…” 할머니는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남녘에서 남편과 함께 ‘북청 물장수’처럼 억척스럽게 일했다.쌀,과자,양초,계란,껌 등을 닥치는 대로 팔았다.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도 할머니는 계속 장사를 해 7남매를 훌륭히 키우고모두 출가시켰다.
이 할머니는 북청 출신답게 북청사자놀이의 숨은 재주꾼이다.요즘도 전국체전,각종 문화제에 초청받아 고향사람들과 함께 사자놀이를 공연한다.
이 할머니는 처녀 시절 어머니에게 배운 요리솜씨 덕택에 요즘도 함경도 진미인 가자미식해,명태식해,도루묵식해를 맛깔스럽게 담근다.
이 할머니는 “이렇게 오래 사는 걸 보면 살아서 동생들을 만나보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면서 “동생들에게 맛있는 식해를 먹일 날을 기다리며 건강하게 살겠다”고 활짝 웃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2000-06-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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