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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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3-15 00:00
입력 2000-03-15 00:00
아니 본 목적은 사내애를 죽여 집 부근 공터에 묻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다.아니 거름 만들기가 아니라 그저 괴롭히다 죽이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이런 식으로 이미 여럿 죽이고 파묻어 어쩐지 주인공 집 부근의 땅은 윤기가나 목화밭 하기에 딱 알맞아 보인다.
벼라별 일이 일어나는 세상인 만큼 이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꼭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데,소설 주인공 부부는 왜 이처럼 짐승같은 짓을 하는가.
희생자들한테특별한 원한이 사무친 것도 아니며,이상심리의 일탈행위자이기엔 부부는 너무 조악하고 행동파적이다.나사가 하나 빠졌거나 이상한 나사가 골 속에 돋아 사람 탈을 쓴 괴물로 변한 탓인가.농담같은 이 말이 바로그 원인이라고 소설은 말한다.인간이 진화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조직되는 수천년 세월에 걸쳐 저 밑으로 가라앉은 인간의 수성(獸性)이 되살아날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같은 잔인한 범죄를 태연히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짐승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명인의 짐승 돌연변이 가능론이 ‘목화밭 엽기전’의 주제는 아니다.그러기엔 거론된 폭력 행위는 항상 최대치로 틀어져 있고 폭력적 정서가지칠 줄 모르는 다이나모처럼 소설을 몰고간다.귀가 뜯기고 눈알이 뽑히고,해머로 머리통이 깨지고 윤간당하고 쓰레기처럼 소각된다.짐승이 아니라 짐승같은 짓이 촛점이다.이같은 엽기적인 상황들이 현실이 아니라 비현실적 공상이라는 걸 알아채긴 하겠는데 대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막가파로 나갈까.독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야수같은 주인공의 존재와 행위를 통해서 우리 세계에는 윤리가 있을 수 없음을,윤리가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며 미신에 불과하다고 말하기 위해서란것이다.주인공의 짐승같고 악마같은 잔혹행위는 보이지 않은 우리 문명과 조직사회의 본질적 윤리부재성을 각성시켜주는 쓴 약이란다.
문제는 대부분의 독자가 소설 속보다는 책 말미와 뒷커버에 씌여진 평론가들의 난해한 설명을 통해 어림짐작으로나마 이 ‘심오한 뜻’을 알게 된다는점이다. 우리 세계엔 윤리가 있을 수 없다는 시각에 대해 수긍할 수도 있고 안그럴수도 있다.그러나 어떤 주제나 시각이든 독자가 소설 속에서 스스로 깨달을수 있을 만큼 소설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점은 만고 진리다.주인공을 힘껏 우그러뜨린 ‘목화밭 엽기전’에서 소설의 제 맛을 맛본 독자는 몇이나될까.
김재영기자 kjykjy@
2000-03-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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