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전화’ 노이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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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3-14 00:00
입력 2000-03-14 00:00
4·13 총선을 한달여 앞두고 가정주부를 비롯한 유권자들이 여론조사를 빙자한 선거운동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는 가정주부들은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마저 느끼는가 하면 수화기 들기를 겁낸 나머지 일부러 외출하거나 114 안내 거부를 요청하는등 ‘전화 노이로제 증후군’을 호소하는 피해까지 생겨나고 있다.
접전이 예상되는 광주시 동구의 가정주부 이모씨(50·운림동)는 “남편은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뒤 혼자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 여론조사를 한다며 특정 후보를 홍보하려는 전화가 하루에도 2∼3차례씩 걸려와 일손을 멈추게 만든다”며 “전화에 질려 집을 비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선거운동원들은 전화를 통해 “A씨가 이 지역에서 출마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A씨가 이 지역에서 많은 일을 했다는데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라는등 노골적인 후보 알리기까지 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주부 한모씨(41·장안구 정자동)도 “한밤중에 특정후보를홍보하는 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의 단잠을 깨우는 일까지 있었다”면서 “유권자를 짜증스럽게 만들어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려는 수법같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한다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기도 한다.
주부 김모씨(37·대구시 달서구 월성동)는 “전화로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한다며 남편의 고향과 함께 ‘지역감정은 경상도 책임인가,전라도 책임인가’ 등을 물으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말을 해 매우 불쾌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를 빙자해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려는 흑색선전도 횡행하고 있다.대전시 유성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송석찬(宋錫贊)씨는 “대덕리서치라는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기관이 ‘송후보가 여자관계등 사생활이 문란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청장하면서 재산이 갑자기 불어났다는데’ 등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며 최근 유성구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기도했다.
이같은 전화공세는 후보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거나 시민·사회단체에서낙선운동을 벌이는 지역에서 더욱 극심한 실정이다.전화번호 등 개인신상정보 유출 및 암거래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함께 전화공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특정정당이나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홍보하는 전화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제보가 없으면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전화를 받을 경우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임송학기자·전국종합 shlim@
2000-03-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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