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문화를](4)돈선거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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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1-07 00:00
입력 2000-01-07 00:00
새해에 걸었던 정치개혁 의지와 각오가 무색하게 탈·불법 선거운동의 망령이 고개를 들고 있다.

4·13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적발한 사전 선거운동 사례만해도 634건에 이른다.15대 총선 당시 같은 기간의 63건과 비교하면 10배에이른다.정치권이 말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도 뒷구멍으로 ‘못할 일’을다하고 있는 셈이다.

적발건수 가운데 불법 인쇄물 배부와 시설물 설치가 337건,금품·음식물·선심 관광 제공사례가 157건이었다.두 가지를 합하면 77.9%로 돈을 ‘퍼부은’ 사전 선거운동 사례가 10건 중에 8건 꼴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봐도 선거판은 여전히 묵은 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있다.영남권의 모 정당 입후보 예정자 A씨는 지난해 12월 중앙당 주관 핵심당원 연수회에 비당원 50여명을 참석시킨 뒤 100만원어치의 음식물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됐다.

경남지역의 모 정당 지구당위원장 B씨는 지난해 11월15일 국정보고대회에참석한 당원 150명에게 근처 음식점에서 불고기백반 등 음식물을 1,000만원어치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서울지역의 모 국회의원 C씨는 지난해11월 초 당원수련대회를 명목으로 선거구민 2,000여명을 경기도 한 농원으로 선심관광을 시키면서 교통편의와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고발 조치됐다.

울산의 모 정당 관계자 D씨는 지난해 11월23일 국정보고대회 행사 당시 관광버스 3대를 빌려 참석 당원 165명에게 왕복 교통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중앙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6일 “이번 총선에서 유난히 사전 선거운동 사례가 많은 것은 정치인의 축·조의금품 제공 조항 등 선거법상 상시제한 규정이 까다로워진 데다 민주산악회 등 조직화된 대규모 산악회가 사라지고 개별적인 산악모임 등이 급증한 데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인터넷을 이용한신종 사전 선거운동의 등장이나 새 정당의 출현에 따른 관련 행사 증가 등도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탈·불법 사례가 급증한 근본원인은 주변 여건이나 제도의 변화보다는 정치권의 의지 결여와 이기주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지난 98년 4월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입법특위가 22개월이 넘도록 당리당략에 발목잡혀공전을 거듭하면서 실질적인 개혁작업에 등을 돌리는 등 탈·불법 사례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정치개혁시민연대도 논평을 통해 “선거를 90여일 남기고 금품,향응 제공등 불법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국회가 선거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장치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은 법안 개정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도적인 대안으로는 선거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의 단일계좌 입출금제,일정 금액 이상 지출시 수표 사용 의무화,법인의 정치자금 기탁 금지 등이 제시되고 있다.정당이나 정치인이 일정 금액 이상 현금을 인출할 때 국세청에자동 통보토록 하는 방안도 투명한 정치자금제도의 필수 조치라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총선을 계기로 새로운 선거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검찰과경찰 등 사법기관의 엄격한 탈·불법 선거운동 단속과 법 적용이 선행돼야한다.아무리 사소한 탈·불법 행위라도 반드시 처벌하는 선례를 남겨 선거때마다 재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2000-01-0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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