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금감원의 징계 무시하는 재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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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12-29 00:00
입력 1999-12-29 00:00
SK건설은 지난 27일 이사회를 열고 박도근(朴道根) 전 SK증권 사장을 부회장에 선임했다.사흘전 금융감독원은 박전사장을 부실경영 등과 관련해 ‘해임권고상당’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박전사장이 이미 97년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에 해임을 권고할 실익이 없어‘해임권고상당’이라는 징계를 하게 됐다.하지만 SK건설은 금감원의 징계를 비웃기라도 하듯,금감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부회장에 영입했다.

금감원은 같은날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 회장,현대투자신탁증권 이창식(李昌植) 사장,현대투자신탁운용 강창희(姜敞熙) 사장에 대해 업무집행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발표했다.하지만 아직까지 현대측의 공식적인 인사조치나사과는 없다.

다만 강창희 사장은 본인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의사를 지인들에게 표시했다고 한다.

현대,SK뿐만이 아니다.삼성도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큰 차이는 없다.삼성생명의 전직 임원 4명이 부당지원과 관련해 문책경고를 받았지만 실효는 별로없다.김헌출(金憲出) 전 사장은 삼성물산 사장을 거쳐 현재는 미래전략위원으로 있다.조용상(趙龍相) 전 부사장은 현재 삼성투자신탁증권 사장으로,황영기(黃永基) 전 전무는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으로 영전된 상태다.문책을받은 전직 임원들이 모두 건재하고,일부는 오히려 ‘더 잘 나가는’ 셈이다.

금감원의 문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이유는 강제력이 별로 없는 까닭이다.은행이나 보험사의 임원이 문책경고를 받아도 연임이 되지 않고 3년 내새로운 자리에 갈 수 없다는 제한만 있을 뿐이다.은행이나 보험사가 아닌 금융기관이나 일반 기업으로 자리를 바꿀 경우에는 전혀 제한이 없다.증권 투신 등 다른 금융기관 임원들은 그나마 이런 제한도 없다.현행법상 문책경고를 100번 받아도 그만두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런 규정 미비는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강제력이 없어 징계와 문책을발표하는 선언적인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벌 자신들에게 있다.계열사 고위 임원이 문제가 있어 문책을 받았으면 당연히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게 의연한 모습이 아닐까.금감원의 솜방망이 징계와 재벌들의 도적적 해이(모럴해저드)는 끝이 없는 것같다.

곽태헌 경제과학팀기자 tiger@
1999-12-2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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