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김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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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10-27 00:00
입력 1999-10-27 00:00
2∼3년 전 ‘미스터 초밥왕’을 그렇게 읽었다.일본 만화다.국내에 소개된많은 일본만화와 달리 폭력도 없고 섹스도 없다.줄거리는 간단하다.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주인공이 도쿄의 초밥집에서 일하면서 초밥요리사 신인왕선발대회에 나가 신인왕으로 뽑히고,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운영하다 몰락한 초밥집을 일으켜 세울 꿈을 가진 채,계속 최고의 초밥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미스터 초밥왕’에 앞서 역시 일본만화인 ‘오 나의 여신님’이나 ‘드래곤 볼’을 아이들이 볼 때는 그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캐릭터에 감탄하면서도 잔소리를 했다.일본문화나 폭력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까 염려해서 였다.
그러나 대표적인 일본음식인 초밥을 주제로 한 이 만화 앞에서는 할 말을잃었다.초밥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초밥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데압도당한 것이다.계절별 생선 고르기,최고의 맛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재료 다듬기,재료의 속맛 끌어내기,밥과 물맛의 조화 이루기,요리를 통한 옛추억 되살리기 등 초밥을 매개로 한 무궁무진한 음식 이야기는,인간의 3대 욕망 가운데 하나가 식욕임을 떠올리지 않는다 해도,국경을 초월할 만큼 재미있었다.우리 김치 이야기를 이처럼 만화로 풀어 낸다면 만화를 무조건 불량식품처럼 취급하는 어른들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다이스케 데라사와(40)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리는 초밥축제 ‘미스터 초밥왕 에피소드1’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한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의 생선이나 김치를 소재로 한 만화도그리고 싶다”고 밝혔다.‘미스터 초밥왕’이 일본에서 1,000만부 이상 팔리고 TV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렸다니 그가 만일‘미스터 김치왕’을 낸다 해도 크게 성공할 듯 싶다.일본에서는 지금 김치가 인기식품으로 떠오르고 있다.게다가 만화를 뜻하는 일본어 ‘망가(manga)’가 국제적인 보통명사로 쓰일 정도로 일본 만화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만큼 김치의 국제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치 이야기를 일본 만화가가 먼저 다룬다면 한국의 ‘김치’가 일본의 ‘기무치’로 변질되지 않을까.
오는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총회에서 김치 국제규격 최종 확정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 양국간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마당이기도하다.
任英淑 논설위원 ysi@
1999-10-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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