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6) 현기영 소설’순이삼촌’<하>
기자
수정 1999-09-29 00:00
입력 1999-09-29 00:00
1980년 8월21일,여름방학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고 있는데 안에서누가 부른다는 전갈을 받고 복도로 들어서자 바로 종로서로 연행 당했다.이사건은 한국 필화 문학사에서 한 전환점을 이룬다.이제까지의 필화는 거의첫 심문에서 필자 이외에 다른 세력의 조종에 의하여 씌여진 것이 아닌가를밝히는 데서 시작했는데,현기영의 경우는 시종 단독 조사에다 애초부터 왜그런 글을 썼느냐는 추궁이었다.
단단히 혼 날 걸 각오했던 작가와는 달리 수사관 쪽은 오히려 건수를 채우고자 갖고 왔으나 헛수고라는 분위기였다.4박5일 동안의 밤샘 조사 뒤 작가는 석방됐으나 바로 ‘순이 삼촌’은 판금도서가 되어 전국 도서관과 서점으로부터 회수 당했다.
현기영은 다행히 교직에 그대로 머물렀다가 1987년 사직한 후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문제의 작품 ‘순이 삼촌’은 70년대부터 분단소재 문학에서 성행했던 귀향 회상 형식의 소설이다.주인공 순이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남녀 어른을 두루 삼촌이라 부르기에 소설 제목은 순이 아주머니의 뜻임)은4·3 때 26세로 과수가 되어 외딸을 출가시킨 뒤 홀몸으로 떠돌던 중 화자인 ‘나’(곧 작가)의 서울 집에 와 일년도 채 못되는 동안 부엌일을 맡아 하다가 신경쇠약으로 두 달 전 귀향해 버렸다.‘나’는 할아버지 제사로 8년만에 귀향하여 일가친척의 안부를 묻던 중 순이삼촌을 거론하자 죽은 날짜도모르게 길가 밭에서 “머리 맡에는 먹다 남은 꿩약 사이나 몇 알갱이 흩어놓고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밭뙈기는 1949년 1월17일,그녀와 어린 남매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끌려가 총살 당한 현장이었다.총소리에 혼절해 버린 탓인지 그녀는 살아났으나 행불된 남편 때문에 엔간히도 고초를 겪으며 유복녀를 추스려 기르던 그녀는일생을 피해망상증으로 시달렸던 것으로 이 소설은 촘촘히 묘사하고 있다.
작가 현기영은 애초에 이 작품으로 현실비판 의식의 작품은 끝내고 보다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자 결심했었으나,필화를 겪으면서 작가 스스로가 피해자란 의식을 갖게되어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4.3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와 통일에 밀착해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필화가 작가와 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산 교훈이 바로 ‘순이삼촌’과 작가 현기영인 것 같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1999-09-29 1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