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와인과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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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7-22 00:00
입력 1999-07-22 00:00
<주형일 서울대 강사> 한국에 잠깐 온 프랑스 교포 한 분이 무척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이 와인을 마시러 가자는 거예요.한국도 얼마 전부터 와인 마시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군요.그런데 영이상한 거예요.왜냐하면 프랑스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신다고 하지 와인을 마신다고 하지는 않거든요.그래서 와인이라는 말이 아주 낯설게들리더라구요.” 한국 친구들의 말은 그에게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비록 프랑스에서 10여년이 넘게 살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고 프랑스에서도 교포사회의 일원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은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가 와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어색함을 느낀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경험담에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어색해했던 와인이라는 말은 사실 한국인에게는 어색한 것이 당연한 외국어이기 때문이었다.



그 교포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주객이 전도된 어색한 언어 생활을 하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래서 그동안 무심히 보던 신문이나 잡지,텔레비전에서 쓰이는 말들을 차분히 살펴보니 모두 멀쩡한 한국말들을 다 버린 채 앞다투어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이 영어인 이 외국어들은 적절한 한국말이 없기 때문에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그에 상응하는 한국말로 바꿔 쓰면 아주 쉽게의미가 통할 말들도 영어로 씀으로써 어지간한 영어 실력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더욱 기가 찬 일은 고위 공직자,언론인,지식인 등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일수록 영어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말을 한다는 것이다.그들이 모두 미국에서 살았거나 유학을 했기 때문에 영어가 한국말보다 더 편하게 느껴져서일까?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며 사회성원으로서의 주체성을 형성시킨다.독립을 원하는 민족이 가장 먼저 자신의 고유언어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이때문이다.그런데 독립이란 고정된 상황이 아니라 끝없이 쟁취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1999-07-2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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