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 기행(하) 대륙속의 한국기업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기자
수정 1999-06-14 00:00
입력 1999-06-14 00:00
베이징 박은호기자 “중국 인구에게 자전거 타이어 하나씩만 팔 수 있다면….하다못해 컵라면 한개씩만 공급한다고 생각해 보라”.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인들이 전하는 중국투자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12억 인구’로 대변되는 어마어마한 ‘구매력’이다.우리나라 기업이 이를 좇아 대륙의 빗장을 처음 푼 것은 한·중 수교 훨씬 이전인 88년.텐트제조업체인 (주)진웅의 진출 이래 봇물 터지듯 투자가 이어져 왔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대(對) 중국투자는 모두 40여억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여건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게 현지 반응이다.중국의 수입제한 강화조치 등이 현지 합작법인들에게 불똥을 튀기고 있는 탓이다.철강과 에너지,비료 등 주요 원자재의 수입을 제한하는 수입쿼터제가 최대 현안이다.한국산 철강재의 경우는 98년 1,240만t에서 올해 700만t으로 대폭 축소됐다.

‘수입중요공업품’이라는 인증을 못받으면 통관이 안되는 사실상의 비관세장벽도 실시되고 있다.

국내산 재료의 수입제한조치에 따라 “품질이 낮은 중국산 제품을웃돈을주고 사 쓰는 경우도 생긴다”(포항제철 베이징 사무소 權錫哲 과장)고 한다.

중국기업과 마지못해 가격담합을 하는 경우도 있다.한 기업인은 “최저 가격을 설정,그 이하로 팔지 말자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털어 놓는다.

시장경제 원칙인 자유경쟁을 포기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처지는 중국기업과의 마찰을 피하고,자칫 덤핑판매로 몰릴 위험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부동산 값 폭락은 또다른 어려움이다.상하이(上海)푸동(浦東)지구에 오는 9월 들어설 포철의 34층짜리 첨단 비지니스 빌딩은현재 “사업착수전 예상 임대단가의 25% 수준에서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전언이다.

인근의 39층짜리 한라그룹의 빌딩도 사정은 비슷하다.그러나 상하이 포철부동산공사의 고순욱(高淳昱)상무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예상되는 올 연말부터는 부동산 경기가 한결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과 한국기업의 이미지는 현지인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여기에서도 ‘음식은 중국,아내는 일본’이라는 말이 쓰인다.그런데 요즘 와서 ‘친구는 한국’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남편을 둔 시안(西安)의 조선족 가이드는 마냥 유쾌한 듯 이렇게 전한다.

“중국인들이 지난해 한국국민의 ‘금모으기’ 운동에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는 말도 뒤따랐다.

물론 한국의 이미지가 중국에서 이렇게 보편화돼 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그렇지만 적어도 한국기업에 대한 눈길이 경쟁국 일본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상하이 진출 7년째인 모 회사 직원의 설명.“일본 상사원들은 대부분 같은아파트 단지에 모여 사는데 이게 폐쇄성으로 비쳐지고 있다.거래처 사람들을 업무위주로만 상대하는 일본인의 몸에 밴 관행도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우리는 그들과 왁자지껄하게 술도 마시고 굳이 일 때문이 아니라도 자주 만나 교분을 쌓는다”.

두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상처받은 현대사를 갖고 있는 점도 일종의 동류의식 형성에 한몫하지 않았을까.아니면 과거 수천년동안 이어온 인접국끼리의원천적인 정서적 친밀감 때문이거나….

어떻든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는 일단 한발짝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는 그의 말은 기분좋게 귓전에 울렸다.

unopark@
1999-06-14 1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