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정보화사회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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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5-27 00:00
입력 1999-05-27 00:00
일전에 이대학보사에서 원고청탁을 해왔다.최근 들어 아동용 휴대폰과 삐삐가 등장한 것에 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부탁이었다.원고청탁서와 더불어 아동용 휴대폰 광고가 전면에 실린 신문을 함께 보내왔다.‘자녀를 위한 사랑,자녀의 위치를 부모의 휴대폰에 표시해 드립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광고내용을 보니 자녀들도 개인용 휴대폰을 하나씩 차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열렸는데,단 조건이 있단다.아동용 휴대폰의 경우는 부모가 선택한 번호9개 이외에는 통화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동의 휴대폰 위치가 부모의 휴대폰에 표시돼 ‘5/3 오후 4:23 단말기가 4:22p[서울시 서초구 방배1동]부근에서 확인되었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아동용 삐삐 역시 친구들끼리의 호출은 불가능한 대신에 ‘학원 갈 시간이다’ ‘밥 먹을 시간이니 집으로 오라’는 등 부모가 간단한 메시지를 선택해서 호출하면 아동의 삐삐에 그 내용이 음성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자녀를 통제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부모 특유의 마음을 최신 정보통신 수단이 놓치지 않고 담아낸 그 재기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정말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기네스북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정보화 사회로 진행되면서 인간 관계의 질적인 측면에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는 지금도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한가지,정보화 사회에서는 시간의 단축 및 공간의 축소 현상으로 인해 삶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인간관계에도 가속이 붙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일례로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않게 된 요즘 연인들은 사귀는 기간 자체가 단축되어,과거에는 1년 정도 사귄 연인들이 ‘초보연인’에 해당되었다면 요즘 1년 정도 사귄 연인들은 ‘오래된 연인’에 속한다고 한다.

편지세대인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우편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그 마음은 편지지를 고르고 정성들여 메운 다음,이제나 저제나 답장이 오기만 기다리는 마음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삭막하기에 그러하다.편지시대의연속적 관계에 익숙해 휴대폰시대의 동시적 관계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는 셈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수단의 등장이 인간관계의 밀도를 높여줄 것인지는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여기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담아내는 우리의 정서 내지 심성이 중요한 것 같은데,지금 현재 우리의 마음이라면 값비싼 전파료를 부담하는 휴대폰을 잡담도구로 전락시켰듯 아동용 휴대폰이나삐삐는 자녀들에 대한 미묘한 통제 도구로 변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지난해 사이버공간에서 사회교육 강의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미래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정보화사회가되면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이 교수’라고 하지만,우리 문화에서는 실현가능성이 높지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이버공간에서 만난 학생들이직접 만나 모임을 만들자는 주장이 빈번하게 등장했고 나의 사생활에 대해지극히 많은 관심을 보여 나 자신 당황했던 적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사이버공간에서 만나 동우회를 조직할 경우에,필히 사이버 공간밖에서도 만남을 갖는다고 하지 않는가.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정서탓일 것이다.

결국 정보사회의 주체도 인간이요 정보기술 활용의 주체도 인간이기에 한국인의 심성과 정서에 부합하는 정보사회문화를 만들어가는 것,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일진데,우리의 경우는 정보기술마저도 지극히 인간적 소망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咸仁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1999-05-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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