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프랑코, 26년만에 ‘그린영웅’ 인간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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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5-11 00:00
입력 1999-05-11 00:00
손님들이 빠져나간 텅빈 골프장.어스름이 내릴 때면 맨발의 한 소년이 바빠진다.워터해저드에 빠진 골프공 몇개를 건져내곤 환한 얼굴로 혼자만의 게임을 시작한다.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쳐보지만 공은 러프에 빠지는 등 제 방향을 찾지 못한다.거친 숲속에서 공을 치다보면 맨발은 어느새 피투성이가되지만 8살의 어린 소년은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골프장이라야 모두 3개뿐인 파라과이에서 골프장 관리인겸 캐디로 힘겨운 생활을 꾸려가던 아버지를 보며 일찍이 골프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워온 때문이다.

이처럼 힘겨운 골프 훈련이 15년 동안 이어졌다.처음에는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그는 조금씩 자신만의 골프 스타일을 만들어 갔고 86년 프로골퍼 자격을 따냈다.그로부터 13년 뒤 그는 마침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정상을 밟았다.

10일 끝난 컴팩클래식에서 19언더퍼 269타의 코스신기록으로 PGA 첫 우승의 기쁨을 안은 카를로스 프랑코(34)가 그 주인공이다.프랑코는 지난해 호주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대회에서 미국팀을 일방적으로 누른 인터내셔널팀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통산 5승을 거둔 일본프로골프에서 제법 이름이알려졌을 뿐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왔다.13년간의프로골퍼 생활중 거둔 승리는 30승.

지난해 12월 미국프로골퍼 자격을 따낸 뒤 올해 8차례 대회에 참가해 컷오프를 통과한 것이 5차례.혼다클래식에서 공동3위를 차지한 것이 가장 좋은성적.그러나 마스터스대회에서 첫 라운드 선두에 오르는 등 공동6위를 기록,주목받기 시작해 컴팩클래식 우승으로 자신의 이름을 PGA역사에 올리며 조국 파라과이의 골프영웅으로 우뚝 서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프랑코는 우승 후 “오늘의 승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이제 사람들은 나를생각하며 조국 파라과이를 떠올릴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이제 그는 9식구가 단칸방에서 법석대던 어린 시절 남에게 빌린 골프채를 들고 물에 빠진골프공을 꺼내러 다니던 기억을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 것이다.파라과이에는 모두 28명의 프로골퍼가 있는데 7남매인 프랑코의 형제중 여동생 1명과 남동생 4명이 프랑코의영향으로 프로골퍼에 입문,파라과이의 대표적인 ‘골프가문’을 이루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1999-05-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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