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교육원조 친미 엘리트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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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9-21 00:00
입력 1998-09-21 00:00
미국대학 총장이 방한하면 동문인 국내 유력인사들의 환영행사가 종종 신문에 실린다.그러나 유럽대학 총장 방한 환영행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우리 사회의 미국 경사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오는 26일 하오 방송통신대학교 별관2층 세미나실에서 ‘1950년대 한국사회의 굴절과 선택’을 주제로 98년 심포지움을 연다.주제는 한국사회 연구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는 50년대를 선정했다.한국사회의 근대적 발전논의에서 식민지 시기와 근대화 프로젝트가 시작된 60년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50년대는 공백지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9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위기구조 및 정치·사회적 특성들은 50년대 선택적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심포지움에서 임대식씨는 ‘1950년대 미국의 교육원조와 친미 엘리트의 형성’이라는 논문에서 미국이 교육·학술,관료 등 지배엘리트에 대한 지원을 통해 친미성향이 조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논문에 따르면 친미적 상황을 조성하는 첩경은 엘리트들을 친미화하여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친미반공체제를 확고히 구축,나아가 그 체제가 유지될수 있도록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다.자기편을 만드는 가장 유력한 방식은 장기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바로 도미유학이다.도미유학이 반듯이 친미파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미유학파들이 친미파의 골간을 이룬 것은 부정할수 없다.또 유학생들이 우리 전통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 반면 서구적 근대에 대해 숭배와 모방의 태도를 보여온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도미유학은 지배엘리트들 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선택됐다.학자들과 관료들이 교환교수 또는 연수라는 명목으로 재교육이 이루어졌으며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들은 장기유학이 이루어졌다.
송인상 전 부흥부장관,이한빈 전 국무총리,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유능하고 신뢰할만한 현직 관료들이 미국유학을 떠났으며 특히 경제관료들의 유학이 많았다.교육관료들도 56년 8월 피바디계획에 따라 도미유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60년대 이후 교육학계에서는 피바디 인맥이 압도했다.언론계에도 미국 연수의 기회가 주어져 박권상,조세형,최병우 등 미국 연수기자들을 중심으로 57년 관훈클럽이 창설된다.
유학은 정식유학,미 국무성지원,원조기관 지원 등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져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해외로 떠났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그러나 각종 자료를 종합해볼 때 해방이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미국유학 경력자는 1만여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단기연수,시찰,교환교육을 포함한 것이다.미국유학편향도는 5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다.
53∼57년 관비유학생 134명 가운데 미국유학생은 69·4%였다.그러나 53년부터 67년까지 정식유학생 7,958명 가운데 86%인 6,845명이 미국유학자였다. 이를 배경으로 미국유학생들은 60년대말 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관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미국유학파들이 최고 엘리트들로 부상하면서 미국유학은 개인적 출세의 방편이자 선진적인 물질과 의식이 도입되는 통로였다며 이는 또 우리나라에서 미국식 또는 미국이 의도하는 근대화가 진행됐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특히 미국유학파들이 학계를 장악함으로써 그 영향은 보다 장기적이고 심층적이고 광범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인다.<任泰淳 기자 stslim@seoul.co.kr>
1998-09-2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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