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왜 안도나/시장금리 내려도 대출은 요지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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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8-05 00:00
입력 1998-08-05 00:00
◎은행은 ‘자물쇠’ 당국은 ‘모르쇠’/은행,구조조정에 희생될까 금고문열기 기피/당국,현실외면한 단순 시장논리에만 의지/기업은 빈익빈 부익부·금리 양극화 심화

“시장금리가 9% 이하로 떨어지는데 은행 대출금리는 왜 떨어지지 않나요”

4일 과천 종합청사에서 열린 경제차관간담회. 추준석 중기청장은 沈勳 한국은행 부총재에게 이같이 물었다. 콜 금리가 9%대로 내려섰는데도 기업들의 돈가뭄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沈부총재는 “실세금리 인하가 대출금리를 내리는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鄭德龜 재정경제부차관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을 확대하면 리스크가 없으니 대출이 늘지 않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선문답 같은 정부 차관급과 한은 부총재간의 대화.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금시장의 ‘부익부 빈익빈’과 금리의 ‘양극화’ 현상이 깔려있다.

금리가 IMF 체제 이전으로 내려갔다고 하지만 5대그룹과 일부 대기업 이외에는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 회사채 수익률 12%대는 5대 그룹에 국한될 뿐 상당수 대기업과 우량 중견기업은 아직도 20% 이상의 금리에 시달리고 있다.

콜금리 등이 9%대로 진입한 것도 신용경색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은행은 기업대출을 거의 끊다시피 하고 있다. 5대그룹에는 돈을 더 주고 싶어도 여신한도가 차 대출을 못해주고 있다. 그러나 중견·중소기업에는 신용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대출심사 조차 않고 있다. 돈은 금융기관의 금고 안에서 놀고 고작해야 같은 금융기관끼리 주고 받을 뿐이다. 금리가 내린 것은 대출 기피로 금융기관의 주머니 사정이 비정상적으로 나아졌기 때문이다.

閔光植 LG증권 상무는 “은행들이 수신금리를 낮추는 것은 돈을 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며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신용이 붕괴돼 대출은 사실상 원천봉쇄되고 있다”고 말했다. 沈勳 부총재도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신속히 마무리돼야 은행들이 기업들에 돈을 풀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내려간다고 기업의 금융비용이 줄고 대출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시각은 현실감각을 잃은 것이다.



鄭德龜 차관은 “조달금리가 9%대라면은행들은 대출금리와의 차이인 6%포인트 만큼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대출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필요하다면 신용보증기금들이 적극 보증에 나서 은행의 부담을 덜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고위 관계자는 “한마디로 시장 상황을 외면한 탁상공론”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퇴출당하는 형국에서 생사여부가 불투명한 기업들에게 정부의 말만 믿고 대출해주는 은행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1∼2년 후에 부실기업으로 판정나면 ‘책임’을 묻겠다는데 누가 나서겠냐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시중금리의 양극화와 기업의 편중여신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李商一 白汶一 기자 mip@seoul.co.kr>
1998-08-0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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