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에게 펜과 종이를(金三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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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6-23 00:00
입력 1998-06-23 00:00
클린턴이 인용한 이 시구는 원래 영국 시인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의 마지막 구절 “if winter comes, can spring de far behind?(겨울이 만일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이다.
金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은 참담한 상황에서도 셸리처럼 언젠가 찾아올‘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고 짧은 지면에 긴 글을 썼다. 옥중의 DJ도 여느 수형자들과 같이 한달에 한번 단 한장의 봉함엽서로 그것도 가족에게만 편지쓰는 것이 허락되었다. 손바닥만한 우편봉함엽서에다 그는 깨알만한 크기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적어보냈고 이것이 후일 「김대중옥중서신」이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당시 양심수에게 집필이 허용되었다면 그는 6년여 동안의 옥살이에서 많은 글을 썼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문화의 값진 자산으로 남았을 것이다.
金대통령 뿐만 아니라 지난날 어두웠던 시절에 옥살이를 한 수많은 양심수들에게 펜과 종이가 주어졌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훨씬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군사정권에 이어 金泳三정권은 양심수들이 글쓰는 것을 철저히 막았고, 지금까지 이런 규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당장 일반 수형자들에게까지 집필을 허용하기가 어렵다면 먼저 양심수들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쓸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문명사회이기 때문이다.
○옥중에서 쓰여진 명저
지금 인류의 값진 유산으로 전하는 명저 가운데 상당수가 감옥에서 집필되었다. 니체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피로 쓰여진’저작물들이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면서 옥중에서 ‘사기’를 썼고, 볼테르는 왕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바스티유감옥에 갇혀 ‘앙리아드’를 썼으며, 존 번연은 베드포드 군형무소에서 11년간 옥살이하면서 ‘천로역정’을 집필했다. 세르반테스는 왕실감옥에 갇혀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으며, 마르코폴로는 포로가 되어 ‘동방견문록’을 썼고, 오헨리는 ‘점잖은 약탈자’등 주옥같은 단편을 옥중에서 썼다.
프랑수아 비용은 사형을 선고받고 지하토굴에 갇혀서 ‘유언시’를 지었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투옥되어 ‘살로메’ 등 명작을 남겼다. 인도의 네루는옥중에서 ‘세계사 개설’을 썼으며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많은 책을 썼다. 그들에게서 펜과 종이를 박탈했을 경우인류의 정신사가 얼마나 황폐했을 것인가 두렵다.
○읽고 쓰는 자유 문명사회의 기본
지금 감옥에는 적잖은 양심수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채 ‘안부편지’정도만 가족과 나눈다. 수백년 수천년 전에 인류는 이미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글을 쓰는 전통이 확립되고, 그 결과물이 값진 유산으로 전하는 터에 문명사회를 자처하는 우리는 언제까지 수인(囚人)들의 붓과 종이를 빼앗을 것인가.
얼마전 출감한 황석영씨가 옥중에서 소설을 썼다면, 신영복 교수가 집필의 자유를 가졌다면, 우리는 보다 풍성한 문학과 사유의 향연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인의 집필금지는 국력의 손실임을 절감하게 된다.
연장선상에서 박노해씨나 박태웅씨 등이 지금 감옥에서 글을 쓸 수 있다면 후일 값진 문화적 자산을 남기게 될 지도 모른다. 아침햇살에 골안개 사라지듯 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신조를 이유로 양심수들의 집필권을 박탈하는 것은 반문명적 시대착오다.
펜 한자루와 종이 한장이 아쉬워 봉함엽서에 5천여자를 썼던 金대통령의 아픔을 이해한다면 새정부는 양심수들에게 펜과 종이를 주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주필 ksu@seoul.co.kr>
1998-06-2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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