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 되는 우리 역사의 비극/연극 ‘천년의 囚人’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1998-05-06 00:00
입력 1998-05-06 00:00
◎안두희·비전향 장기수·광주진압군 정신병원 병동서 한자리에…/“결국 모두가 피해자” 함축적 고발

반복되는 비극의 우리 역사를 역설과 해학으로 풍자한 연극 ‘천년의 수인(囚人)’이 8일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른다.

동숭아트센터가 심판되지 않은 우리 역사를 소재로 지난해부터 기획해 온 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제2탄.지난해의 화제작 ‘나,김수임’이 여간첩 김수임의 삶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민족적 비극을 다루었다면 ‘천년의 수인’은 이같은 민족적 비극이 역사적으로 수없이 되풀이됨을 테러리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고발한다.

언제나 역사에 시선을 두고 지난 30년의 한국 현대사를 연극으로 재조명해온 오태석씨(58)가 희곡을 쓰고 연출도 맡았다.94년 쓴 ‘백마강 달밤에’이후 5년만의 신작.오씨는 이 작품에서 테러리즘과 비극적 역사를 상징하는 주인공으로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를 내세웠다.그리고 역사의 되풀이를 강조하기 위해 안두희에 앞서 백범 암살 임무를 띠고 북에서 남파됐다가 체포된비전향 장기수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돼 소녀를 사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신질환 청년을 한 자리에 세웠다.오씨의 상상력을 통해 이들 3인이 함께 만나는 공간은 애꿎게도 정신병원이다.

이곳에서 안두희와 비전향 장기수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확신범의 모습이다.이에 반해 청년은 자책감을 견디지 못한다.둘은 “역사에 책임을 지겠다”며 청년을 구제해 달라는 탄원서를 남기고 스스로 죽기로 한다.하지만 정작 죽는 자는 청년이다.둘이 탄원서 내용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사이 옆 침대의 청년이 안두희로 오해를 받아 칼을 맞는다.반복되는 역사에 담긴 비극의 한 예시다.



책임지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며 그 되풀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이 연극은 역사의 교훈으로 강조한다.제목의 ‘수인(囚人)’은 이같은 메시지를 함축한다.테두리(감옥)에 갇힌 사람(囚)과 테두리 밖의 사람(人),어느 쪽에 서 있든 결국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재수없게 코를 꿰인 피해자가 될수 있다는 메시지다.그래서 지난해 봄 ‘불순한 문제위식’이라는 이유로 국립극장측의 공연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수인이란 단어가 뜻하듯 감옥이든 세상이든 갇힌 민족의 숙명적 비극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지만 역설과 익살이 풍부한 대사,굿과 악극,인형극 등 다양한 연극적 형식을 통해 부담없이 메시지를 전달한다.연출가 오씨와 안두희역의 이호재,장기수역의 전무송 등 3인이 79년 ‘물보라’이후 20년만에 함께 호흡을 맞추며 조상건·정진각·김남숙·정원중·한명구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가세한다.6월14일까지.화∼목 하오 7시30분,금 4시30분·7시30분,토·일 3시·6시.3673­4466.<崔秉烈 기자>
1998-05-06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