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실직 시련은 재기의 출발선/소아마비 제화공 高昌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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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4-20 00:00
입력 1998-04-20 00:00
IMF 한파로 실직한 40대 소아마비 장애인이 일본을 시찰한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20여년간 제화공으로 외길을 걸어온 高昌植씨(42·서울 성동구 성수 2동).그는 지난 17일부터 2박3일동안 창업서비스 회사인 ‘(주)이창희서비스’가 장애인과 실직자 40명을 위해 마련한 무료 창업탐방 프로그램에 참가,일본을 둘러보고 귀국한뒤 ‘다시한번 수제화 업계의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불태우고 있다.
高씨는 ‘장애인 창업팀’으로 동료 4명과 함께 일본 오사카시 중심에 있는 지하철 남바(亂波)역과 혼마치(本町)역 사이의 구두세탁소·셀프 빈대떡집·이색 애완동물센터·중고 CD점과 철 지난 도서만을 모아 둔 고서점 등을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그는 특히 집안 대대로 이어받은 제화술로 그 집만의 독특한 모양의 수제화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일본인들에게 크게 감명받았다.10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들이지만 끊임없이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부러움과 함께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3천만원 정도의 소자본으로도 소비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상품만 만들어 팔면 승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高씨는 15살때 부산 최고의 양화점이었다는 남포동의 ‘포스톤’에서 구두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손재주가 뛰어나 이내 인정을 받았다.20살때 상경,천호동에 수제화점을 차렸고 한때는 40평이 넘는 공장에서 20여명의 구두공을 거느렸다.
서글서글한 인상에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품때문에 92년에는 서울지역제화공 노조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들어 유명 메이커에 밀려 수제화 업계는 급격히 몰락했고 高씨는 하청업자로 전락했다.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다 급기야 지난해 11월부터 일거리마저 떨어져 아내가 버는 돈 몇푼에 의지하게 됐다.
다른 일을 하려 해도 다리 때문에 마땅치 않고 구두를 만들어도 살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평생 처음 장애인으로서의 좌절감을 느꼈다.
그러나 高씨는 이번 창업탐방을 통해 평소 생각에만 그쳤던 꿈을 실현하기로 했다.구두 한쪽 속안에 비스듬한 굽을 넣고 바깥 밑창을 두툼이 보강한 지체장애자용 구두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몇해 전 자신을 위해 만든 이 구두는 발이 매우 편할 뿐만 아니라 절름거림도 훨씬 덜하다.남들이 외면하는 분야에 손을 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장애인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지하철역 주변에 장애인 전용구두점을 내겠다”며 희망에 넘쳐있다.
高씨는 “사실 우리나라의 제화기술이 세계 최고”라며 “세계기능올림픽에 나가면 이태리 등의 참가선수마저 경쟁을 포기하고 우리 기술을 익히려고 했다”고 자랑했다.한국이 금메달을 독점하자 70년대 후반 제화부문만 폐지했다는 것이다.<金慶雲 기자>
1998-04-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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