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 설치는 실향민들/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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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2-23 00:00
입력 1998-02-23 00:00
요즘엔 가슴이 벅차올라 밤잠을 이룰 수 없다는 어느 실향민의 전화를 받았다.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고령 이산가족의 방북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겠다고 나서고 이에 화답하듯 북측이 사회안전부에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주소 안내소’를 설치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 생긴 증세란다. 반세기 동안 수없이 속고도 이산가족 상봉문제가 거론되면 영낙없이 가슴이 설렝다는 그는 이번에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한 것 같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펴고 그중에서도 이산가족 재회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데다 북측의 태도도 상당히 누그러진 것같아 ‘이번에는 틀림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 때문이란다.

그러나 똑같은 사안을 내다 보는 북한전문가나 언론의 시각은 이 실향민처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이산가족들이 하루 빨리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최근 남북의 움직임을 쌍수를 들어 환영만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지나치게 기대했다간 그만큼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북의 이산가족찾기 사업은 대남통일전선 전술의 하나이거나 새 정부를 떠보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남한 내부의 혼란을 부추기고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는 인권 시비를 비켜가기 위한 술책이라거니,이산가족찾기를 빙자한 인구센서스일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심지어 식량을 얻어내거나 일종의 외화벌이로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고 추정하기 까지 한다.이같이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까닭은 상대가 보통평균인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집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와 언론이 이러한데 실향민들이나 일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는가.그저 3월중에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이산가족 상봉 주선을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지켜 보는 것 밖엔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느긋하게 기다리면서 남북관계자들이 어떻게든 회담을 만족스럽게 성사시켜 우리민족의 문제를 4자회담­6자회의를 통하지 않고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 풀어나가는 예지를 모아주기를 간절히 빌어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아닌가 싶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인 10여년전,서독에 사는 아들과 동독에 사는 부모가 동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만나 마치 산책 나온 것처럼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담은 TV화면을 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우리도 올해안엔 그렇게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살다 보니까 험난한 IMF파고도 남들보단 쉽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밤잠을 설친다는 실향민의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1998-02-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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