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기자
수정 1998-02-23 00:00
입력 1998-02-23 00:00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봄을 알리는 매화가 한달이나 일찍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다.부산에서 시작되어 통영 마산 순천을 거쳐 개화전선이 서서히 북상하는 모양이다.한차례의 꽃샘추위를 제외하면 당분간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예년보다 빠른 3월중에 서울에서도 매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날씨가 풀리자 거리마다 사람들의 물결이 넘치고 있으나 봄의 화사함은 찾아볼 수 없이 모든 것이 탁하고 칙칙한 분위기다.더구나 엊그제 TV에서 보여준 것 같이 갈곳없는 실직자들이 서울역과 지하철 속에서 밤을 지새는 광경이나 실직자를 두번 울리는 신종 사기는 마음을 한층 무겁게 짓누른다.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너와 나에게 부닥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시인 한용운은 매화의 야멸찬 의지를 좌절한 사람들에 비유하여 이렇게 충고한다.‘성함과 쇠함, 사라짐과 자라남(소장영고)의 순환은 우주의 원칙이며 실의의 사막에서 헤매는 약자도 절망을 성급하게 점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매서운 겨울이 봄을 품고 있듯이 북풍한설과 엄동에 굴하지 않는 매화의 강인성을 마음속에 되새겨 스스로에게 용기를 심어줘야 할 때다.
1998-02-23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