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양 유괴살해 현장검증 이모저모
수정 1997-09-18 00:00
입력 1997-09-18 00:00
17일 상오 2시간여에 걸쳐 실시된 박나리양 유괴 살해사건의 현장검증에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몰려 끔직했던 당시 상황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범인 전현주씨(28)는 “속죄할 수 있도록 죽게 해달라”고 시종일관 되뇌었다.
○…전씨는 이날 박양을 처음 만나 유괴했을 때처럼 검은색 멜빵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몽타주처럼 가지런히 머리를 빗어 넘겼으며 뿔테 안경을 착용해 초췌했던 검거 당시와는 달리 비교적 깔끔한 모습.
전씨는 시종 머리를 떨군 채 범행을 재연했으며 간간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형사들에게 범행 순간을 설명.
○…첫번째 검증현장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킴스클럽 앞에서는 전씨의 남편 최모씨(34)가 갑자기 나타나 전씨에게 “사실대로 말해”라고 소리쳐 한때 술렁이기도.최씨는 “아내가 검거되기 전 수십 차례에 걸쳐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하고 “유서까지 남긴 사람이 남편에게마저 거짓말할리는 없다”면서 공범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주장.최씨에 따르면 전씨는 “공범들이 시키는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는 것.하지만 경찰은 전씨가 남편 등 가족에게는 거짓말을 한 것이며 전씨의 단독범행이라고 거듭 확인.
○…비교적 담담하게 범행을 재연하던 전씨는 박양을 살해한 사당동 극단사무실에서는 흐느끼다 잠시 실신.
전씨는 나리양의 목을 조르는 장면에서는 나리양을 대신한 인형에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형사들의 손에 이끌려 인형의 목을 눌렀다.
○…전씨의 부모는 전씨가 붙잡히기에 앞서 딸이 연루된 사실을 눈치채고 “속죄하는 길은 자살뿐”이라며 세차례에 걸쳐 딸에게 자살을 종용했던 것으로 밝혀져 눈길.
전씨는 지난 15일 작성한 진술서에서 경찰이 친정집으로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오자 어머니가 지난 9일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행여 이 사건에 연루됐다면 자살을 해라.너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도 너를 따라 갈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써놓고 편히 가라’고 말했으며 이튿날인 10일에도 다시 찾아와 같은 말을 했다고 적었다.
전씨는 이에 따라 집 근처 약국에서 자살하려고 살충제를 구입했으나 경찰에 쫓기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덧붙였다.<이지운 기자>
1997-09-18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