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윤덕희의 ‘하마선인도’(한국인의 얼굴: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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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7-19 00:00
입력 1997-07-19 00:00
◎선인과 두꺼비의 익살 그려/선 굵은 얼굴에 큰웃음 담아

도교와 불교를 도석이라고 한다.도교의 상징은 물론 신선이다.그러나 도석인물화라는 그림에서 불교의 상징은 부처가 아니다.나한이나 승려가 등장하는 것이다.그러니까 도석인물화는 도교의 신선과 불교의 나한을 묘사한 그림이다.도석인물화는 거의가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아내어 흥미롭거니와 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의 하나가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 낙서 윤덕희(1685∼1766)가 그린 ‘하마선인’이다.도교풍의 선인이 어깨에 올려놓은 두꺼비 말목을 슬쩍 거머쥐고 걷는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했다.신선은 마치 두꺼비와 말을 건네는 자태다.그리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맨발로 성큼성큼 걷고 있다.두꺼비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신선은 함빡 웃음을 지었다.두꺼비는 막상 말을 던져놓고 선인 표정을 살피는 눈치다.

이 그림의 주제는 옛날 이야기 고사에 두었다.10세기쯤 중국의 후량에 유해라는 선인이 세개의 발을 가진 두꺼비와 살았다.그가 바로 하마선인이다.

하마선인이 키운 두꺼비는 주인을 세상 어디라도 데려다줄수 있는 신통력을 지닌 영물이었다.

그런데 두꺼비는 가끔 우물속으로 달아나 버렸다.그럴 때마다 선인은 금돈이 달린 끈으로 두꺼비를 잡아 끌어냈다.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하마선인과 두꺼비가 나오는 그림을 행운의 상징으로 보고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를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선인과 두꺼비의 만남은 대자연의 섭리요,자연에 순응하면서 생명체들이 어울려 사는 공존의 질서다.그리고 그림에 나타난 선인과 두꺼비의 삶에는 조화가 깃들였다.그림이 신비스러워 보이는 까닭도 비범하기 짝이 없는 두꺼비와 선인이 만나서 함께 살아가는데 있을 것이다.참으로 기이한 그림이기는 하나 화폭에는 푸근한 정감이 어렸다.

선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다.선이 굵은 얼굴에 큰 웃음을 담았다.나이 탓도 있겠지만 얼굴 여기저기에 골 깊은 주름이 진 것은 소탈한 웃음 때문일 것이다.웃음이 너무 커서 다물지 못한 입속으로 이빨이 드러났다.그야말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만면희색의 선인은 코주부 못지않은 코를 자랑했다.눈썹은 아직 검다.눈은 본래 컸을 법도 하나 웃음을 웃느라 좀 작아졌다.관자놀이 연저리에 좀 남은 머리칼이 아니었더라면,선과 석을 구분하지 못했을만큼 귀 역시 크다.오종종한데가 없이 기골이 장대한 선인이다.〈황규호 기자〉
1997-07-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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