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윤두서의 자화상(한국인의 얼굴: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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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7-05 00:00
입력 1997-07-05 00:00
조선시대 중기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한 공재 윤두서(1668∼1715년)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남겼다.작가가 자신을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이 뚜렷한 ‘윤두서상’은 사실상 가장 오래된 자화상일 것이다.문인이자 화가였던 그는 자기의 얼굴을 종이에다 옅은 물감을 써서 그렸다.국보 240호인 그의 자화상은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종가 녹우단에 보존되었다.
이 자화상에는 얼굴만이 가득 들어있다.세로 38.5㎝,가로 20.5㎝의 화폭을 온통 얼굴과 얼굴을 감싼 수염으로 채웠다.화폭에는 얼굴 말고 다른 여백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그래서 얼굴이 강렬하게 부각되었다.거울에 비친 자신과 대결이라도 하면서 자화상을 그린 듯 박진감이 넘친다.그래서 화면을 선뜻 마주하기에는 좀 두려운 구석이 있다.서양미술이 자화상에서 추구한 자아인식은 아닐지라도,어떤 내면세계가 분명히 보이는 작품인 것이다.
이 자화상은 윤곽을 검은 선으로 가늘게 그리고 색을 칠하는 구륵법보다는 붓질을 여러 번 하는방법으로 어두운 부분을 표현했다.눈두덩 위와 눈아래 부분,코와 코방울 언저리에서 입가로 흘러내린 주름 법령등이 그것이다.입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처리되었다.다시 말하면 얼굴바탕과 같은 색깔을 여러번 칠해서 강조할 부분을 돋보이게 한 필법이다.이 화법은 당시 유행한 초상화 기법이기도 했다.
눈은 살아서 번득이고 있다.사람이 빨려들어갈 것처럼 생동감이 우러나는 눈이다.이 초상화의 핵심은 바로 눈에 있다.얼굴을 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려넣는 이른바 점정의 효과를 최대로 살린 자화상인 것이다.얼굴 각 부위에 수염이 잇달아 난 연발수는 눈과 함께 자화상 주인공의 인물을 위풍당당하게 만들었다.기개있는 선비로 묘사된 이 자화상은 조선시대 걸작의 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화상의 효시는 물론 윤두서가 아니다.그 이전에도 자화상을 그린 사람들이 있었다.허목(1595∼1682년)의 미구기언을 보면 고려의 공민왕이 거울속의 자기 얼굴을 그렸다는 ‘공민왕조경자사도’ 이야기가 나온다.그리고 조선시대 ‘매월당집’은 김시습(1435∼1682년)이 젊어서와 늙어서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두 장을 그렸다고 기록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실물은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또 후대에는 이광좌와 강세황이 자화상을 그렸다.<황규호 기자>
1997-07-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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