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낭비 기근 부른다/지홍 스님<낙산사 주지>
기자
수정 1997-03-23 00:00
입력 1997-03-23 00:00
북한동포들이 초근목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고 유엔식량기구와 전 세계 매스컴이 보도하고 있다.또 TV화면에 가끔씩 비치는 흑인 어린이들의 처참한 몰골도 생각난다.극도의 영양실조로 가늘어진 팔다리,부황으로 개구리 배처럼 부풀어 오른 복부….
○북한·아 등 식량난 시달려
이들에게 먹는 것은 생사를 걸고 투쟁하는 일이지,「포도청」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몇백만명이 굶어 죽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귀한 양식이 지금 내 앞에 있고 내가 그것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고맙다 못해 두려움까지 느낀다.
쌀 「미」자 생긴 모습대로 여든여덟번의 수고를 거쳐 입 안에 들어온다는 밥,그 수고를 한 농부에서부터 밥을 지은 공양주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밥에게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음식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8조원의 어마어마한 액수,그 쓰레기를 땅에 묻으면 그 곳에서 시커먼 악취가 코를 찌르는 침출수가 홍수처럼 흘러 나와 강을 오염시키고 바다를 썩게 만든다니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더이상 난지도에 쓰레기를 묻을 데가 없자 서울의 쓰레기를 김포에 갖다 묻는데 지역주민들이 자기지역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안받겠다고 나오니,서울 시내가 갑자기 난리가 났다.음식물 쓰레기가 곳곳에 산처럼 쌓여 악취가 진동하고 사람의 통행이 어려울 정도다.
「밥을 식탐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약으로 생각하며 먹는다는 것」.이것이야 말로 음식물 쓰레기 대란을 막는데 절대 필요한 방법이다.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다.이런 사람은 위장병도 없다.
처음부터 아주 적당량만을 그릇에 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불자세계의 「오관게정신」과 「발우공양」을 말한다.일반인들의 발우공양은 부페식 식사법이다.
식사문화가 사찰에서의 발우공양 형식으로 바뀌지 않고는 음식물 쓰레기를 해결할 길이 없다.
남에게 술을 권해야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것과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때 조금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둘은 이제 현실과 맞지 않다.
○적당량만 덜어먹는 습관을
음식물 낭비의 반대급부는 기근이다.아프리카와 북한의 기근이 우리 일이 되기 전에,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풍요할 때 아껴야 한다는 격언은 부처님의 인과응보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곡물 해외의존도는 56%에 이른다.더이상 식량문제는 강건너 불이 아니다.전쟁터에서 군인이 실탄을 아끼듯 쌀은 곧 무기이다.
미국을 「미국」이라고도 쓰는데 이유는 미국이 쌀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농부 한명이 50만명분의 식량을 생산한다니 쌀장사 안하고는 미국정부가 견뎌낼 수 없다.
쌀을 국력으로 하면 군사를 국력으로 하는 것보다 자국민의 전사피해를 내지 않아 좋고,공업을 국력으로 하는 것에 비해 공해가 없어 좋다.
오늘날 식량은 무기로 변했다.우리처럼 식량을 필요 이상으로 과소비하는 나라를 미국이 보면 『우리의 종놈이 하나 생겼구나』하고 좋아 할 것이다. 「식량안보」를 생각하며 음식물쓰레기 최대 생산국이라는 가장 어리석은 일을 하루빨리 시정해야겠다.
1997-03-23 1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